오남석 사회부장
정년 65세 청구서 낸 양대 노총
민주당 연내 입법 호응 급물살
임금삭감 없는 정년연장 우려
베이비부머 파워 정치권 유혹
현재권력이 미래 잠식할 우려
공멸 피할 창의적 해법 찾아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지난 5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법정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올해 안에 처리하라고 공식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도 ‘연내 입법’을 공언하며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노동계 요구가 아니더라도 고용 연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베이비붐 1세대(1955∼1963년생)와 2세대(1964∼1974년생)가 법정 정년을 넘겼거나 정년에 도달하면서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도 급격하다.
준비 안 된 은퇴로 인한 노인 빈곤도 심각하다. 현재 63세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33년 65세로 올라가는 만큼, 은퇴와 동시에 소득이 끊기는 ‘소득 크레바스’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고용 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전보다 더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게 국가와 개인 모두에 이익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 요구는 과해도 너무 과하다. 민주당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노동계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이어야 한다. 둘째, 선별적 재고용이 아닌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정년 연장이어야 한다. 셋째, 입법 작업을 서둘러 올해 안에 완료해야 한다.
‘임금 삭감 없는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정년 연장’ 주장은, 양대 노총의 요구를 두고 이재명 정부 탄생을 도운 데 대한 ‘청구서’라는 평가가 왜 나오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근속 기간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서열형 호봉제를 유지한 채 법정 정년만 연장할 경우 청년 고용이 위축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국회미래연구원이 낸 ‘정년 연장 시대, 직무급과 사회적 합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30년 이상 근속자 임금은 1년 미만 근속자의 2.95배에 달한다. 고령자 1명의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 3명을 채용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양대 노총이 “노사 입장은 충분히 확인됐고, 더 이상 접점을 이루기 힘든 상황에서 마냥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며 연내 입법을 재촉하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사회·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난 사안을 마치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중대한 문제가 내년 6·3 지방선거 방책으로 악용될 가능성이다. 베이비붐 1세대(약 700만 명)와 2세대(950만 명)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들의 ‘선거 파워’는 고용 연장에 적극적인 여당뿐 아니라 야당에도 유혹적이다. 이른바 ‘머릿수’만 생각했다간, 이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포퓰리즘 경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고용 연장 논의가 세대 대결 양상으로 흐르는 것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청년층에 비해 정치에 관심이 많고, 자산과 영향력 등 사회적 자본 면에서도 우월하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 세대는 동원력과 조직력도 막강하다. 말이 세대 대결이지, 발언권 센 ‘현재 권력’이 힘없고 파편화된 ‘미래 권력’을 잠식하는 결과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어렵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견지할 것은 인내심과 포용력, 치밀함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복잡한 문제를 보편적이고, 일률적으로, 단칼에 해치울 수 있는 묘수는 없다. 오히려 법정 정년 이후의 노동을 ‘특수한 노동’으로 설정하고 기존 법령과 관행을 뛰어넘는 창의적 해법을 찾는 게 현실적일 수 있다. 특히, 청년층의 ‘작은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수도권 은퇴자의 비수도권 중소기업 취업을 지원하는 정책 패키지를 제안한 한국경제인협회의 ‘베이비부머 붐 업 프로젝트’, 호봉제 대신 직무의 난이도·책임·기술 수준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직무급제’ 도입을 주장한 국회미래연구원 보고서 등 아이디어는 쏟아지고 있다. 고령층이 주 5일보다 적게, 보다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머릿수 싸움은 곧 공멸’이라는 절박함이 이런 아이디어를 사회적 합의로 승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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