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하성란 - 챗gpt
발목
스크린 안으로 강이 흘렀다. 강물은 하류로 흐르면서 속도를 늦추더니 흰 모래톱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 후시 녹음으로 덧입힌 강물 소리는 선명하면서도 아련했다. 비릿한 강바람이 불었다. 새가 지저귀고 그악스럽게 울던 매미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곳에 앉아 있으면 최는 곧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시(市)는 오래전 메말라 바닥을 드러낸 강을 되살려냈다. ‘우물가(Umulgga)-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업이었다. 요즘 젊은 층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아날로그’ 취향이 명칭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이가 제법 많은 최도 실물의 우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물이라는 이름만으로 잊힌 풍경과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최는 강 복원 사업 초기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고증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시에서는 강을 “직접 체험해본” 사람들을 모집했다. AI 사용법까지 익힌 이는 드물어 마지막에는 최와 동료 박, 둘만 남았다.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일이 최에게 활력을 주었다. 처음 출근하던 날에는 손목의 ‘워치’가 이렇게 물을 정도였다.
“선생님, 지금 운동 중이신가요?”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 몇 개를 노트북의 프롬프터 창에 입력했다.
강, 고요, 햇살, 매미소리, 평화로움.
엔터. 순식간에 화면 위로 수많은 문장이 꼬리를 물며 생성되었다. 홍보팀이 원한 건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문구였다. 일일이 읽어볼 필요도 없었다. 어느 누가 뽑아도 다 뽑을 수 있는 무난한 문장들이었다. 맞은편의 박도 비슷한 문장들을 보고 있을 게 뻔했다.
최의 기억 속의 강은 달랐다. 여름 한낮, 햇빛에 달궈진 모래는 뜨거웠고 단단했다. 모래가 닿는 발바닥이 따가워서 종종걸음 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강물에 발을 담갔을 때, 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돌아 어머니를 찾았다. 그를 쭉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는 내 그럴 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물이 너무 차서 발목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 고요, 햇살, 매미소리, 평화로움…발목.
엔터. 작은 창이 떴다. 권장 단어 목록. 평온, 위로, 가족, 추억. 금지 단어 공포, 침수, 상실, 상처, 통증. 목록 어디에도 ‘발목’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필터 설명에 문장이 따라붙었다. ‘신체 감각의 과도한 구체화는 불안을 유도할 수 있음.’
‘평온’ 필터와 충돌. 안전, 치유, 회복 같은 권장 단어들 속에서, ‘발목’은 존재할 수 없는 단어였다.
그날, 불현듯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강을 찾았다. 어머니는 뭔가 마음을 정리하려는 것처럼 보였고, 어렸지만 그는 그 기색을 눈치채서 오랜만의 나들이에도 즐거워할 수 없었다. 강가에 내놓은 아이가 걱정되어 줄곧 그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때때로 어머니는 무언가를 결심하는 듯 입을 다물곤 했다.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최는 부쩍 강에 관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모래는 너무 뜨겁고 강물은 너무 차가웠다. 강바닥에는 물살에 쓸려 닳고 닳은 자갈이 깔려 있었다. 크기가 제각각인 자갈을 밟을 때마다 그는 균형을 잡지 못해 휘청였다. 발을 헛디뎌 물살에 휩쓸린 건 순식간이었다. 작은 몸이 데굴데굴 물속에서 굴렀다. 퀄퀄퀄, 거친 물살이 귀로 쏟아들었다. 하지만 그때 그랬던 것처럼 발에 차인 커다란 바위를 딛고 힘껏 물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꿈에서 깼다.
‘워치’가 연신 경고음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십니까?” 정해놓은 시간 안에 응답하지 않으면 바로 119로 연결되고 새벽에 구급대가 원룸으로 출동해 이웃의 잠을 방해할 것이다.
평화롭기만 하던 강은 자신의 속 어디에 그런 구멍을 숨겨두었나. 그리고 어둠 속의 실낱같은 희망으로, 거기 커다란 바위 하나를 놓아두었을까.
강, 고요, 햇살, 매미소리, 그리고…구멍.
엔터를 누르지는 않았다. ‘평온’필터와 충돌할 게 뻔했다.
업무 메신저에 다음 주 기자회견용 카피 초안을 올리라는 알림이 떴다.
강, 고요, 햇살, 매미소리, 평화로움. …그리고.
결과를 빨리 얻고 싶은 욕심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름을 추가했다. 잠시 뒤 헨리 데이비드 소로풍의 문장들이 쏟아졌다. 백 년도 지난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의 SF 속의 ‘VT세트’가 시(詩)를 토해내듯이.
―강물은 침묵 속에서도 흐릅니다.―고요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물은 잊지 않습니다. 우리가 흘러온 길을.
체험 시간은 15분. 심박 변화에 따라 환경음은 조정되고 불필요한 공포는 자동 완화된다. ‘우리강 체험관’은 기억 박물관 일층에 있었다. 출입구와 각 스튜디오로 연결되는 바닥에는 투명한 강화유리가 깔려 있어, 반층 높이 아래로, 강물이 마르고 드러난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투명한 유리 복도에 발을 디딜 때부터 환호성을 질러댔다.
스튜디오로 들어온 아이들이 하나둘 고글을 쓰면서 아이들의 흥분은 절정에 달했다. 그때마다 최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안전요원들도 고글을 썼다. 아이들의 눈앞으로 여름 한낮의 평화로운 강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직 공식 홍보 전이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알음알음 ‘우리강 체험’이 시작되었다. 모래밭은 적당히 따뜻하다. 강물은 재잘거리며 흘러간다. 매미가 운다. 적당한 데시벨이다. 강물에 발을 담근 아이가 놀라 누구에게랄 것이 없이 소리친다. “차갑다!” 하지만 강물의 온도도 적당하게 조정되어 있다. 잠시 뒤 아이들이 모두 강물로 뛰어들고 자갈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는다.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진다. 고꾸라져서 바지가 젖는 아이도 있다. 물장구를 치고 친구에게 물을 마구 뿌려댄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최도 매번 옷이 젖기 싫어 장난을 치는 아이들 곁에서 멀리 떨어져 서 있었다. 젖어 온몸에 무겁게 달라붙은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한 아이가 기어코 울음을 터뜨린다. 친구가 밀어 강물에 빠지고 만 것이다. 안전요원이 달려가 아이를 일으켰다. ‘우리강’에서는 누구도 빠질 위험이 없다. 가장 깊은 곳도 무릎 높이였고, 그것마저 VR이 만들어낸 가공의 강물이다.
고글을 벗은 아이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송보송했다. “다 말랐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이제 아이들은 강으로 놀러 오게 될 것이고 ‘우리강에 발을 담갔다’라는 경험이 공동체의 공통 기억으로 주입될 터였다.
고글을 반납한 아이들이 스튜디오 입구에 서 있는 최에게 달려와 외쳤다.
“할아버지, 우리 강에 다녀왔어요!”
메마른 강바닥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건물이 마주 서 있었다. 기억박물관의 꼭대기층은 공중회랑으로 건너편의 데이터센터와 이어져 있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최는 그 공중회랑을 통해 두 건물을 오갔다. 아이들의 소감은 늘 엇비슷했다. 평화로웠다. 행복했다. ‘평온’ 필터를 누른 자신의 챗GPT가 뽑아낸 문장과 다르지 않았다.
최는 공중회랑 가운데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한쪽에서는 데이터의 흐름이, 다른쪽에서는 기억의 복원이, 그 중간에는 진짜 강이 사라진 자리가 드러나 있었다. 오래전 모래 위에 발을 디뎠던 그 감각이 떠올랐다. 뜨거운 모래, 발목을 움켜쥐던 강물의 차가움 그리고 물에 휩쓸리던 순간의 공포.
일곱 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갔던 강에 그는 다시 가지 못했다.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어머니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또 있었다. 최는 최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강이 두려웠다. 그사이 강물은 말라 바닥을 드러냈다.
최는 눈을 감았다. 여름 한낮, 강이 펼쳐졌다. 커다란 바위를 딛고 힘차게 일어서자 다시 그악스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눈을 잘 뜰 수 없었지만, 너무 놀라 일시 멈춤한 듯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 어른이 강으로 뛰어들었고 최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울지 않느냐고, 어떻게 이렇게 어른스러울 수 있느냐고, 어른들이 칭찬했다.
어머니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잠시의 방심으로 아이를 영영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죄책감이 그 뒤로도 오랫동안 어머니를 괴롭혔다. 그는 물을 뚝뚝 흘리면서 어머니에게 다가갔고 어머니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제야 눈물이 나왔다. 어른 같은 아이는 울지 않으므로 울지 않아야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누가 보든 말든 그는 울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울기 시작했다.
“현실·가상세계 경계 흐리는 AI 달라질 미래 걱정”
■ 작가의 말
“앞으로는 실제 경험이란 게 누구나 누릴 수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는 인공지능(AI)은 현실과 가상 세계 사이 경계를 흐린다. AI는 현실 세계까지 스크린 안에서 변형·창조해 나가면서 자신의 영역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챗GPT 유료 구독자이기도 한 하성란 작가는 AI의 효용을 누리는 동시에, 그로 인해 변해버릴 미래를 걱정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실제 경험을 위해 비용과 노력을 들이는 대신 AI를 통해 가상 체험을 하게 되는 게 더 쉬워지는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러나 “미세하게 보일 수 있는 개인의 경험들이 만들어 나가는 차이가 매우 크고, 그런 경험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인간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 속 최가 경험한 강은 챗GPT가 생성해낸 평온하고 따뜻한 홍보 문구와는 다르게 소스라치게 차갑고 공포감마저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경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작가는 1996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후 소설집 ‘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 ‘여름의 맛’과 장편 ‘삿뽀로 여인숙’ ‘A’ ‘크리스마스캐럴’ 등을 펴냈다. 동인문학상, 이수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인지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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