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첫 개인전 ‘깃털로 만든 여인’ 줄리 커티스

 

모성애의 상징 ‘펠리컨’ 활용

엄마의 양육 행위 명암 표현

 

“출산·육아하며 단순해진 삶

작품 형태나 색에 영향 끼쳐

어둠 속 작은 유머 찾아주길”

내년 1월10일까지 한국 전시

줄리 커티스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시도한 이면화‘요람들(Cradles·2025)’. 아크릴과 오일을 사용한 두 개의 평면 작업을 나란히 배치했다.화이트큐브 제공
줄리 커티스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시도한 이면화‘요람들(Cradles·2025)’. 아크릴과 오일을 사용한 두 개의 평면 작업을 나란히 배치했다.화이트큐브 제공

“사물이든 사람이든, 내면과 외부 세계 간에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죠. 동시에 두 가지 의미, 즉 양면성이 드러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출산을 한 뒤로는 엄마의 양육 행위에 깃든 아름다움과 잔혹성을 동시에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프랑스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 중인 줄리 커티스(43) 작가는 지난 3일 서울 청담동 화이트큐브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커티스 작가는 자신의 한국 첫 개인전 ‘깃털로 만든 여인(Maid in Feathers)’을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전시는 엄마가 되며 변화한 관점과 작업 방식이 스며들어 있다”면서 “내가 출산을 한 계절이 겨울인데, 겨우내 서울에서 그 작품들을 선보이게 돼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깃털로 만든 여인’은 화이트 큐브 서울의 올해 마지막 전시로, 내년 1월 10일까지 펼쳐진다.

신작 20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커티스 작가는 새롭게 이면화(두 평판을 하나로 붙여 쌍을 이루게 한 그림)를 시도했다. 대표적인 것이 ‘요람들’이라는 작품으로, 왼쪽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검은색 유모차가, 오른쪽엔 마치 유모차처럼 보이는 커다랗고 검은 부리를 지닌 펠리컨이 나란히 배치됐다. 서양에서 펠리컨은 모성애의 상징이다. 부리로 자신의 몸을 쪼아 새끼에게 피를 먹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커티스 작가는 그것이 실제 사람의 양육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모성이라는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개념을 한 캔버스 위에 담고 싶었어요.” 따라서 펠리컨은 피로와 사랑, 헌신과 욕망이 뒤엉킨 복합체, 한 생명을 품기 위해 자신을 찢어내는 존재의 초상인 셈이다.

검은 커튼이 캔버스를 분할해 마치 이면화처럼 보이는 작품 ‘샘(La Source·2025)’.화이트큐브 제공
검은 커튼이 캔버스를 분할해 마치 이면화처럼 보이는 작품 ‘샘(La Source·2025)’.화이트큐브 제공

여성을 주로 그려온 커티스 작가는 여성의 얼굴을 잘 그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전통적으로 여성성의 상징이 돼온 신체의 특정 부위도 기존 인식과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벗어나 표현한다. 2020년을 전후해 평단뿐 아니라 미술 시장에서도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데는 그러한 새로운 시선과 파격이 한몫했을 것이다. 커티스 작가는 “사실 인기 요인이라든가 하는 건 스스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라면서도 “한 그림에서 여러 면을 볼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이 많이 해주곤 한다”며 웃었다. 또한 자신이 상황의 전복이나 사람의 양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가족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커티스 작가는 프랑스인 어머니와 베트남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아빠는 집안일과 요리를 즐겼고, 엄마는 바깥일을 더 열심히 했죠. 성장기 저에게 아빠는 따뜻한 색, 엄마는 강하고 차가운 색으로 연상되곤 했는데, 통념을 따르지 않는 가정의 풍경이 열린 시선을 갖게 해준 것 같아요.”

베트남계 프랑스 작가 줄리 커티스는 여성의 정체성을 위트 있게 전복하거나 해체하는 작업으로 최근 평단의 주목과 함께 미술 애호가들로부터도 열광적 지지를 얻고 있다.화이트큐브 제공
베트남계 프랑스 작가 줄리 커티스는 여성의 정체성을 위트 있게 전복하거나 해체하는 작업으로 최근 평단의 주목과 함께 미술 애호가들로부터도 열광적 지지를 얻고 있다.화이트큐브 제공

이면화 ‘요람’뿐 아니라 이번 전시에선 유독 펠리컨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펠리컨은 ‘밤의 방문자’라는 제목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또 여성의 난자, 혹은 생명의 잉태를 상징하는 ‘달걀’도 이번 작업에서 주요한 이미지다. ‘거품기를 든 여자’에선 한쪽 가슴을 드러낸 여성이 요리를 위해 달걀을 사용하고 있다. 일상적인 장면을 기괴하게 바꿔 가사 노동과 돌봄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하는 작품이다. 또한 이번에 발표한 신작들의 색은 이전보다 단순해졌다. 주로 검정과 흰색의 단조로운 대비가 눈에 띄는데, 이는 밤 또는 새벽을 연상케 하는 색이기도 하다. “엄마로서의 삶엔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요. 경계가 매우 흐릿합니다.” 그렇게 어린 아기를 돌보는 엄마(작가)의 깊은 피로와 불안의 상태가 그림에 반영됐다. 작가는 “엄마가 되고 나니 작업 시간의 상당 부분을 아이에게 할애해야 했다”면서 “작업 시간 확보를 위해 삶의 패턴을 단순화했는데, 그러면서 작품의 형태나 색에도 영향을 끼쳤다. 나도 내 삶도 작품도 모두 단순함을 추구하는 시절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검정과 흰색의 대비,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여성의 모습 등 주제어들은 자칫 어두워지기 쉽지만, 그림들은 하나씩 조그마한 유머를 품고 즐거움을 준다. 그게 최근 그녀의 작품들이 전 세계 미술 컬렉터들의 러브콜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모든 빛과 어둠, 그리고 버거움에 관한 것”이라는 한 줄로 요약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두의 삶이 그것의 순환이죠. 빛과 어둠, 그리고 버거움. 그래도 작은 유머로 버텨보세요. 그게 제가 그리는 이유고, 여러분이 그림을 보는 이유일 겁니다.”

작가는 2004년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영 아티스트상을 받았고 여러 차례 펠로십 프로그램의 참가 작가로 선정됐다. 화이트 큐브 홍콩(2023)과 뉴욕 안톤 컨 갤러리(2022), 런던 화이트 큐브 메이슨스 야드(2021)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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