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문화부 차장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미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어워즈의 높은 문턱을 넘었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2021년부터 3년 연속으로 후보에 이름을 올린 지 3년 만이다. 게다가 K-팝이 본상에 해당되는 ‘제너럴 필즈’(General Fields) 후보에 오른 건 처음이다. 이제는 내년 2월 열리는 시상식에서 K-팝 최초 수상을 노린다.

의미 있는 행보에 미국 AP통신은 “그래미가 K-팝을 주변이 아닌 중심 무대에서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고, 영국 로이터는 “K-팝이 팝의 주류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K-팝 제작자와 아티스트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K-팝이 더 이상 한국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경고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케데헌’으로 한국이 얻는 직접적 수익은 없다. 미국 소니픽처스가 만들고, 넷플릭스가 유통한 이 작품의 지식재산권(IP)은 모두 미국에 있다. ‘메이드 인 USA’라는 뜻이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매기 강 감독이 연출하고, 또 다른 한국계 가수 겸 프로듀서인 이재 등이 OST ‘골든’을 불렀지만, 그들이 한국에 뿌리를 둔 ‘외국인’이라는 점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즉, 한국 밖에도 K-팝을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인재는 넘친다는 뜻이다.

로제가 부른 ‘APT.’(아파트)는 ‘그래미가 사랑하는 가수’로 유명한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불렀다. 또한, 미국 애틀랜틱 레코드가 주요 제작사다. 이 콘텐츠의 지분은 상당수 미국이 갖고 있다. 또 다른 미국의 내로라하는 아티스트가 K-팝 가수를 피처링으로 참여시켜 K-팝풍의 노래를 부른다면 이는 K-팝일까? 아닐까?

비유를 해보자. 올림픽에서 한국의 최고 효자 종목은 단연 양궁이다. 여자 대표팀은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 10연패를 달성했다. 그럼 묻자. 한국은 양궁의 종주국인가? 그렇지 않다. 양궁은 영국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대다수가 이제 ‘양궁=한국’을 떠올린다. 태권도 종목에서 한국보다 금메달을 많이 목에 거는 국가가 나타났듯, K-팝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

K-팝이 특정 국가만 소비하는 음악이 아니라 보편적 장르가 된 건 반갑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콘텐츠로 거듭났다는 의미다. 하지만 반대로도 생각해야 한다. 이제 K-팝은 누구나 향유하고, 또 파생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

넷플릭스와 소니픽처스가 K-팝과 한국 전통문화를 활용해 만든 ‘케데헌’의 성공은 기쁘지만, 동시에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앞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미국 최대 방송시상식인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감독상(황동혁)과 남우주연상(이정재)을 거머쥐었다. 어떻게 미국 ‘로컬 시상식’의 트로피를 받을 수 있었나? ‘오징어 게임’은 미국 자본이 바탕이 된 ‘미국 작품’이기 때문이다. 훗날 ‘오징어 게임’을 리메이크하거나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때, 이를 결정할 권리는 미국이 갖고 있다. 로제와 ‘케데헌’의 성과를 보며, IP 주권 확보 및 수호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다.

안진용 문화부 차장
안진용 문화부 차장
안진용 기자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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