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정치부 차장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일 ‘국정안정법’이라는 생경한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야권의 이재명 대통령이 피고인인 재판 재개 주장을 ‘대선 불복, 국정 발목 잡기’로 규정하면서 이를 끊어내고 국정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 대통령 형사재판의 재개 여부가 국정감사에서 거론되고 대장동 비리 사건 관련자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불안 요소를 완전히 지우려던 것이다. 비록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바람에 하루 만에 중단됐으나, ‘국정안정법’ 해프닝은 민주당이 얼마나 ‘포장하기’에 능한지를 보여줬다. ‘재판중지법’이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고,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의도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완곡어법(euphemism)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완곡어법은 오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 불편하거나 민감한 주제 혹은 금기를 부드럽게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전혀 다르다. 본질을 흐리고 사실을 은폐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프레임을 조작하는 데에 이용된다. 사실상 선동 수단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진 교수는 “전체주의자들이 악행을 감추기 위해 종종 사용했다”면서 “나치는 고문을 ‘강력심문’이라 하고, 유대인 강제수용소행은 ‘대피조치’라고 부른 바 있다”고 했다.

여권은 이런 잔기술을 지나치게 활용한다. 검찰이 대장동 비리 사건 1심 판결에 항소를 포기한 것을 두고 민주당은 어김없이 역량을 발휘했다. 민주당은 “항소 포기가 아닌 항소 자제”라고 표현을 바꿨다. 장윤미 대변인은 “무분별한 항소 관행을 자제하기로 한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했다. 수사팀을 비롯해 검찰 내부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항명’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친윤(친윤석열) 정치 검사들의 쿠데타적 항명이 참으로 가관”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개혁’ 역시 비슷하다. 민주당은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 등을 내용으로 하는 형사사법제도 개편을 ‘검찰 개혁’이라고 부르며 자연스럽게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반개혁으로 몰리기에 십상이고, 1차 수사기관에 대한 통제의 약화가 초래할 심각한 부작용 등은 부차적인 사안으로 치부된다. 사법부마저 민주당의 ‘악마화’ 공격에 휩쓸리고 있다. 여당은 ‘사법불신 극복 및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라는 기구를 만들며 ‘사법부=비정상적 기관’이라고 못 박았다.

중국의 첫 통일 왕조인 진나라의 몰락에는 환관 조고가 자리한다. 진시황이 갑자기 죽자 조고는 재상 이사와 짜고 어린 호해를 황제 자리에 올렸다. 이후 이사마저 몰아내고 권력을 농단했다. 사슴을 황제에게 바치며 말이라고 우기기까지 했다. 권력자가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호도하던 진나라는 통일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멸망했다. 민주당이 사슴을 말이라고 주장하는 건 그들의 자유다. 다만, 유권자는 호해와 같은 바보가 아니라는 점은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들은 평가하고 심판하는 주인이다.

조성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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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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