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일기자의 여행 - ‘달콤 쌉쌀’ 인삼향 가득한 충남 금산
수삼 통째 튀겨 조청 찍어 한 입
푸슬한 식감에 막걸리 안주로 딱
축제음식 선보인 뒤 주전부리 돼
수삼 열서너 뿌리 한 채 2만 원대
4년생도 튼실… 6년 근 못지않아
금산인삼관엔 인삼주 병들 흥미
미스인삼·왕중왕 등 모양도 특이
제원면 천내리 주변 금강 습지
억새·버드나무 군락 풍경 근사
물·새소리 들으며 걷기를 추천
적벽강 협곡엔 비밀스러운 경관
요광리 은행나무 수령 1200년
보석사 나무, 아파트 10층 높이
활개 치듯 펼친 가지 귀물 느낌
금산=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 금산의 인삼튀김을 대하는 자세
충남 금산에 대한 기억 하나. 금산을 대표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인삼이다. 특산물이 관광에 기여하는 바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도 지역의 인문이나 문화 대신, 관광객에게 대뜸 특산물부터 앞세울 때면 거부감이 앞선다. 특산물 좌판을 가득 펼치고 장사에 몰두하면서, 그걸 ‘축제’라고 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그게 ‘장터지 축제냐’는 생각. 금산에 가면 ‘인삼튀김’을 내는 가게가 많다. 포장마차나 분식집에서 내는 가벼운 주전부리처럼 인삼튀김에 인삼주를 낸다. 인삼튀김을 정식 메뉴에 올린 식당도 많다.
인삼을 식용유에 튀긴다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분식집 스타일의 메뉴로 격하시킨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호기심에나 영합하는 ‘족보 없는 음식’쯤으로 규정했다. 적잖게 금산을 드나들었는데도 인삼튀김을 절대 먹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 인삼튀김을 맛보고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튀김에서 인삼 특유의 독특한 매력이 느껴졌다. 선입견이나 편견, 혹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을 생각해보게 한 계기다. 그 뒤로 실험적인 먹거리에 더 관대해졌다. 완도의 전복빵이나 제주의 꽁치김밥, 신안의 김바게트에 후한 점수를 주게 된 것도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이제 인삼튀김은 금산에 들르면 맛 때문에라도 꼭 찾아 먹는 음식이 됐다.
# 인삼 한 뿌리에 인삼주 한 잔
수삼에 튀김옷을 입혀 통째로 튀겨낸 인삼튀김은 2000년대 초반, 금산인삼축제 때 이벤트처럼 선보인 음식이었다. 첫선을 보인 뒤에도 한동안은 축제 때만 맛볼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대중적인 주전부리 음식이 됐다. 지금 금산에는 인삼튀김집 숫자가 분식집보다 더 많다. 인삼을 튀겨놓으면 생으로 먹을 때와 달리 쓴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튀김 특유의 바삭한 느낌에다 푸슬푸슬한 감자 같기도 한 식감이 썩 괜찮다. 튀김에는 보통 간장을 곁들이지만, 인삼과 짠맛이 어울리지 않으니 간장 대신 조청을 낸다. 수삼을 썰어 꿀을 찍어 먹는 것에서 착안했을 것이었다. 조청은 인삼을 넣고 고아내서 단맛을 많이 줄인 것인데, 인삼튀김과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인삼튀김 한 뿌리는 2000원. 여기다가 보통 한 잔에 1000원을 받는 인삼막걸리를 곁들인다. 인삼막걸리는 망에 넣은 곱게 간 수삼을 막걸리에 담가서 저온숙성한 것. 인삼을 담가 향을 입혔으니 향이 진하다. 인삼튀김과 인삼막걸리가 말해주는 건 인삼에 대한 인식변화다. 과거에 인삼은 비싸고 귀한 약재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재배기술이 발전하면서 인삼은 ‘고급스럽지만 그리 비싸지 않은 식재료’가 됐다. 튀김 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내고, 막걸리에다 담글 정도로 흔전만전해진 것이다.
# 장(醬)과 술, 김치 그리고 인삼
금산 인삼튀김의 기억을 꺼낸 건, 금산에서 시도되고 있는 ‘K-미식 인삼벨트’ 사업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은 작년부터 ‘K-미식 벨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미식벨트 사업이란 지역 음식을 대표 자원으로 삼아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지역 대표 음식의 매력을 십분 활용해 관광상품을 고도화해보자는 것. 그래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 고용을 창출하고, 수출도 해보자는 취지다. 작년에 농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처음으로 시도한 게 ‘장(醬) 벨트’다. 한식을 대표하는 발효식품 간장과 고추장을 맨 앞에 세운 것이다. 장류를 대표하는 지역인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을 찾아 장담그기 체험을 즐기고 음식을 맛보는 관광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에 힘입어 올해는 세 개의 K-미식 벨트가 시도되고 있다.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한 전통주 벨트가 있고, 광주광역시를 앞세운 김치벨트, 또 금산 인삼을 앞세운 ‘인삼벨트’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건 인삼벨트다. 음식이나 식재료로서 인삼은 다소 낯설다. 인삼이 미식 개념에 어울리는 식재료일까.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데, 한약재나 건강식품인 인삼을 놓고 맛을 따지는 게 맞는 걸까. 인삼이 과연 여행을 이끌 수 있을까.
# 금산이 인삼을 대표하는 이유
인삼은 ‘금산의 것’이다. 재배의 역사가 길기도 하거니와, 전국 유통의 자그마치 80%쯤을 전담하고 있어서다. 금산의 인삼 재배면적은, 사실 다른 인삼재배 지역보다 넓은 편이 아니다. 생산량도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인삼은 금산의 것이라고 말하는 건 인삼이 제 것이라는 걸 일찌감치 깃발 박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금산은 인삼의 종주를 자처한다. 그걸 증명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곳이 개삼터공원이다. ‘개삼(開蔘)’은 글자 그대로 ‘삼을 연 곳’이라는 건데, 개삼터는 인삼 최초 재배지쯤의 의미다. 공원이 들어선 자리는 남이면 성곡리의 개안이 마을이다. 마을에는 인삼의 전설이 전해진다. 개안이 마을 노인정에서 한 노인에게 채록했다는 금산인삼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 강 처사가 병든 어머니를 위해 진악산의 굴에서 산신령에게 기도를 드리다가 삼(蔘)을 점지받아 그걸로 어머니를 살렸다는 얘기. 강 처사는 삼 씨앗을 받아 마을에 심었는데, 처음 삼을 심은 자리가 개안이 마을의 밭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적 고증이 없는 ‘카더라’ 식 이야기에 결정적으로 힘을 보탠 건 금산의 향토기업인 삼남제약이 발굴한 자료였다. 금산 출신인 삼남제약의 고(故) 김순기 회장이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 도홍경(456∼536)이 쓴 ‘신농본초경집주’에서 ‘인삼은 백제 삼이 좋다’는 기록을 찾아냈던 것. 자그마치 1500년 전의 기록이었다. ‘백제 삼이라면 금산에서 난 게 틀림없다’는 게 금산 사람들의 추론. 경북 영주의 풍기를 비롯해 다른 인삼 산지들이 ‘인삼역사 500년’을 자랑할 때, 금산은 자랑스럽게 1500년 전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 인삼이 여행을 즐겁게 한다
막상 가서 인삼을 중심에 놓고 금산을 여행해보니, 훨씬 더 즐거워졌다. 가마솥에 삶아낸 한방삼계탕도 맛보고, 식품 명인이 빚은 인삼 꽃술도 맛보고, 민물고기에다 인삼을 넣고 쑤어낸 인삼어죽도 맛봤다. 인삼을 직접 캐는 체험도 해봤다. 한식진흥원 주최로 충남문화관광재단이 진행했던 K-미식인삼벨트 여행상품이 선택한 프로그램은 다 흥미로웠다. 이달 초까지 모두 여섯 차례 진행한 당일치기 여행상품의 예약이 조기에 마감됐던 이유다. 미식을 주제로 한 여행이고 정성껏 만든 인삼 음식도 좋았지만, 맛이 전부는 아니었다. 새삼 느낀 건 여행에서 지역의 특산물이 주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산지에서 잘 재배한 인삼을 먹거나 시장에서 인삼을 살 때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이 있다. 인삼이 여행의 경험을 훨씬 더 풍성하게 해준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른 특산물과는 다른, 인삼이 주는 특별함이다.
금산에는 예닐곱 개의 인삼시장이 있다. 금산을 찾은 관광객은 대개 수삼을 찾는데, 금산에서 수삼을 거래하는 대표적인 판매시장은 ‘금산수삼센터’다. 도매시장 44개소와 소매시장 92개소, 생약시장 30여 개소로 구성된 대단위 시장이다. 이곳에서 의외였던 건 인삼이 ‘생각보다 싸다’는 것이었다. 여행지의 제철 과일이나 수산물보다 더 저렴하게 느껴졌다. 수삼의 사고파는 단위는 ‘채’다. 한 채는 750g.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한 채에는 인삼 열서너 뿌리쯤이 담긴다. 한 채 가격은 대략 2만5000원 선이다. 좀 못생겼거나 실뿌리에 상처가 있는 건 1만7000원에도 살 수 있었다. 먹기에도, 선물하는 데도 그리 부담이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봐도 비싼 것과 싼 게 잘 구분이 되지 않으니 선물하는 게 아니라 자가소비용이라면 저렴한 것도 문제없다.
# 금산 인삼이 싸게 느껴지는 이유
금산에서 인삼이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시장에 나온 인삼이 대부분 4년생이라서다. 6년 근 인삼을 쳐준다는 건 다 옛날얘기다. 재배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4년만 키워도, 굵고 튼실하다. 인삼의 사포닌 성분도 6년 근과 다름없다. 인삼은 5년을 넘기면서부터 관리가 어렵고, 채산성도 좋지 않다. 6년 근이 없는 건 아니지만, 4년 근이나 5년 근이 대부분인 이유다.
금산에서 인삼을 사는 건 즐겁다. 소모적인 소비가 아니라 ‘건강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것도 제 건강이 아니다. 제가 먹으려 구입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챙겨줘야 할 가족이나 지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다. 인삼은 과일이나 고기 같은 단순한 식재료와는 다르다. 인삼에는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걸 사서 누군가에게 준다고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기분 좋은 설렘 같은 게 느껴진다.
인삼에 대해 알고 싶은 궁금증은 금산인삼관에서 풀 수 있다. 인삼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소개해놓은 전시관이다. 인삼의 역사부터 재배과정, 활용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돼 있다. 지하 1층∼지상 3층의 전시관에는 흥미로운 볼거리도 제법 있다.
금산인삼관 1층 로비에는 인삼주를 담은 병이 가득하다. 사람 키보다 큰 인삼주병이 있는가 하면, 역대 금산 인삼축제 ‘인삼왕 선발대회’를 수상한 인삼주도 모아놓았다. 인삼 선발대회도 여러 부문이 있다. ‘미스 인삼’과 ‘미스터 인삼’이 있고, 왕중왕을 가리는 ‘인삼대왕’ 부문이 있으며, 기이한 모습의 인삼을 가리는 ‘특이모형’ 부문도 있다. 부문별 수상작들을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있다. 홍삼, 백삼, 흑삼, 태극삼 등 제조과정에 따라 달라지는 인삼의 종류를 소개한 전시도 흥미롭다.
비록 복제품이지만 금산인삼관에는 ‘천년 인삼’도 전시돼 있다. 천년 인삼은 부산의 한 사찰의 목조보살 좌상 배 안에서 발견된 유물. 불상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배 안에서는 인삼과 직물조각, 볍씨 등 47종의 유물이 발견됐다. 복장 유물로 인삼이 발견된 건 유일하다. 탄소연대측정 결과 인삼은 1060년에서 앞뒤로 80년 이쪽저쪽의 시기쯤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 금산에는 금강이 있다
인삼 이야기는 이쯤하고, 금산에 있는 다른 것들을 얘기해보자. 금산에는 금강(錦江)이 있다. 금산과 금강은 짝을 이룬다. 금산이 ‘비단 금(錦)’에 ‘뫼 산(山)’이고, 금강이 ‘비단 금(錦)’에 ‘물 강(江)’이다. 산도, 물도 이름이 다 ‘비단(錦)’이다.
금산 땅에서 금강은 ‘적절한 강폭’을 유지한다. 이쪽에서 ‘어이∼’하고 부르면 강 건너편에서 ‘어이∼’하고 손들어서 답해줄 만한 거리. 그래서 ‘지호지간(指呼之間)’이다. 멀면 아득하고, 가까우면 옹색하다. 딱 이 정도가 푸근하고 정겨운 거리(距離)다. 금산의 금강구간 곳곳에는 고요하고 아늑한 강 풍경이 있다. 소(沼)와 여울이 있는 곳도 있고, 옛 나루의 흔적이나 고요한 습지가 펼쳐진 곳도 있다. 금산의 금강 변에는 지금, 눈부신 억새가 물결치는 고요한 가을 강변 풍경이 펼쳐진다.
금산의 금강구간에서 두 곳을 추천한다. 먼저 제원면 천내리의 금강 변이다. 금강 물길이 사행(蛇行)하는 천내1리 강변에는 제법 규모가 큰 습지가 펼쳐져 있다. 습지는 제원면 저곡리 ‘금산에코습지교육원’ 강 건너편에 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그대로 반영하는 천변의 웅덩이와 초록의 초지, 억새의 물결과 버드나무 군락이 어우러진 습지는 근사한 풍경을 빚어낸다. 차로 갈 수도 있지만, 걷기를 권한다. 습지의 한쪽에는 차가 다니면서 바퀴로 내놓은 길의 흔적이 있지만 따라가 보면 길이 끊긴다. 도리 없이 들어간 길로 고스란히 되짚어 돌아 나와야 하는데, 비포장 길 운전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차를 놓고 걸어서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습지를 산책하는 편이 낫겠다.
# 금산에는 세 그루 은행나무가 있다
금산에서 또 한 곳, 금강의 명소가 있다. 부리면 수통리의 적벽강이다. 금강 변의 협곡 바위벼랑이 우뚝 솟아 있는 곳인데, 산과 강이 붉은 벼랑과 어우러진 경관이 마치 먹으로 찍어 그린 수묵화처럼 근사한 곳이다. 가파른 협곡으로 강변 길이 끊긴 막다른 오지. 적벽강에서는 양각산과 갈선산 사이 협곡을 내려오는 금강의 비밀스러운 경관을 볼 수 있다. 단언하건대 적벽강은 우리 강의 원형과 서정이 진하게 느껴지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다. 그런데 작년에 이 협곡의 강변을 깎아내 도로를 놓았다. 도로의 편의와 절대로 바꿀 수 없을 만큼 빼어난 정취가 있던 곳이었는데…. 길이 난 걸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미 길은 났고 이제 되돌릴 도리는 없다. 이 길을 권한다. 길이 나면서 흐트러지긴 했지만, 여기는 남아 있는 풍경만으로도 감탄이 나온다.
금산에는 지금 찾아가면 딱 좋은 곳이 있다. 세 그루 은행나무 얘기다. 깊어가는 가을날에 온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노거수 은행나무를 하나씩 찾아보는 여정은 얼마나 운치 있을까. 먼저 금산 추부면의 ‘요광리 은행나무’부터 시작하자. 요광리 은행나무는 벌판에 혼자 우뚝 서 있는 천연기념물 노거수다. 주변에 정자가 있다 해서 ‘행정(杏亭) 은행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무의 수령은 1200년을 헤아린다. 수십 년 전 벼락을 맞아 위쪽 줄기가 말라죽었지만, 가장자리 수십 개 줄기가 다발을 이룬 채 살아 있다. 키는 24m쯤으로 그리 크지 않지만, 다발의 줄기로 이룬 몸집이 거대하다.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13m에 달한다. 은행나무는 조선시대부터 명목(名木)으로 널리 알려졌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집에도, 율곡 이이의 글에도 등장한다.
# 사람과 공존하는 노거수 은행나무
두 번째는 금산의 천년고찰 보석사의 은행나무다. 886년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 대사가 다섯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알려졌다. 모두 여섯 그루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딱 한 그루만 살아남았단다. 보석사 은행나무는 큰 키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높이는 34m로 아파트 10층 높이다. 활개 치듯 펼친 가지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보통이 아니다. 대번에 귀물(鬼物)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다. 주민들은 이 나무가 절을 지켜주고 마을을 보호해준다고 여긴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면 소가 우는 듯한 소리로 운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으리라. 1945년 광복 때와 6·25전쟁 때, 그리고 1992년 극심한 가뭄에 울었단다.
마지막 세 번째 은행나무는 요광리 은행나무에서 멀지 않은 신평리에 있다. 앞의 두 나무보다는 작고 어리다지만, 신평리 은행나무도 수령 800년을 헤아리는 노거수다. 신평리 은행나무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마을회관 공터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서다. 나무는 그늘을 주고, 주민들은 아침마다 싸리비로 떨어진 은행잎을 쓸어낸다.
늙은 나무와 마을 노인들이 교유하는 모습이 어쩐지 뭉클하다. 나무와 사람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풍경. 늙었으되 시든 가지 하나 없이 당당하게 우산살처럼 가지를 뻗고 서 있는 나무도, 그 나무를 돌보며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도 성자(聖者)처럼 느껴진다. 가을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 ‘K미식’이 금산에서 찾아낸 곳
한식진흥원과 충남문화재단이 ‘금산의 대표명소’로 점찍어 여행자들을 데려갔던 곳을 살짝 귀띔한다. 한방삼계탕을 내는 식당은 제원면 길곡리의 식당 ‘신안골모퉁이’를 골랐다. 인삼주 시음은 인삼주 생산업체인 금성면 파초리의 ‘금산인삼주’에서 진행했다. 소주 담금주에다 인삼 뿌리를 넣는 그런 인삼주가 아니라, 식품명인이 쌀과 누룩, 그리고 인삼을 넣고 발효시켜 빚는 ‘진짜 인삼주’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박경일 전임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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