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논설위원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이듬해 시모노세키조약에 의해 일본에 대만을 할양했다. 대만은 초기 강한 항일운동을 펼쳤지만, 항거가 진압된 이후엔 식민 지배 50년간 대체로 순응적인 편이었다. 일본이 식민지 수탈 구조에도 불구하고 대만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게 내부 평가다. 일본에 우호적인 지식인도 적지 않았다. 대만 민주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은 교토제국대학에 유학한 대표적인 친일 인사다. 그는 재임 시 일본 우익 진영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일본의 군사 강국화가 중국 견제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가졌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친대만 기조를 계승하고 있다. 그는 2021년 첫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때 “총리에 오른다면 대만과 협력 메커니즘을 구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중국의 고조되는 대만 압박을 명분으로 자위대의 군사력 강화와 평화헌법 개정 등을 노리고 있다. 대만 독립 성향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총통도 일본에 더욱 기울고 있다. 라이 총통은 지난 8월 중남미 순방 때 미국을 경유하려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로 일정이 무산되면서 트럼프의 ‘대만 방어 의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7일 중의원에서 미·중 간 무력 충돌을 전제한 대만 유사(有事) 사태를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로 본다”고 했다.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가능성을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일본 주재 중국 외교관이 일본 총리를 겨냥해 “더러운 목을 베어버릴 수 있다”는 극언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삭제했다.

대만의 지정학적 위치는 일본에 중요하다. 일본은 2023년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 제도에서 170㎞ 떨어진 이시가키섬에 신규 미사일부대 주둔지를 구축하는 등 대만 유사시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만해협 주변에서 해·공군력을 확대하는 중국과 일본 간 갈등이 고조될 경우 무력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의 개입을 의미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과 동맹 현대화를 논의 중인 우리 입장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 대만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