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경북 경주를 세계 외교의 무대로 끌어올렸다. 21개국 정상과 대표단이 모인 그 현장은 단순한 회의장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환대가 세계의 시선을 받은 거대한 전시장 같았다. 나는 10월 24일부터 11월 1일까지 관광 프로그램 운영 자원봉사자로 현장에 참여하며, 30년간 관광공사에서 일해 온 경험으로도 보기 드문 ‘문화외교의 결정체’를 직접 체험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달된 ‘황남빵’, 다른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제공된 ‘비비비당의 오감차(五感茶)’다. 하나는 맛으로, 다른 하나는 향으로 외교의 순간을 완성했다. 시 주석은 황남빵을 “맛있다”고 평했다. 짧은 한마디가 지역의 전통빵을 ‘외교의 상징’으로 바꿔 놓았다. 그 이후 황남빵 본점엔 관광객이 몰렸고, ‘정상빵’이란 별칭과 함께 경주의 대표 브랜드로 떠올랐다. 한마디가 지역의 맛을 세계 외교의 언어로 바꾼 셈이다.
며칠 뒤 또 다른 향의 장면이 이어졌다. 10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객실에는 경주 힐튼호텔의 찻집 비비비당이 준비한 오감차가 웰컴 티로 올랐다. 그는 “향이 깊고 부드럽다”고 평했다. 그 짧은 멘트 하나가 다시 한 번 한국의 차 문화를 세계의 뉴스로 만들었다. 시진핑의 빵이 ‘맛의 외교’였다면, 트럼프의 찻잔은 ‘향의 외교’였다. 나는 자원봉사자로서 비비비당을 두 번 방문했다. 백자 다완 위의 차, 한지 트레이, 은은한 조명. 그 모든 것이 ‘정제된 한국’의 미학을 담고 있었다. 비비비당은 단순한 찻집이 아니라 한국 다도의 품격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확신했다. 한 잔의 차와 한 개의 빵이, 한국의 품격을 세계 외교의 언어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회의가 끝난 뒤, 비비비당의 원소윤 대표는 발 빠르게 ‘트럼프 찻상 세트’를 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공된 웰컴 티 구성을 그대로 재현한 이 세트는 ‘외교의 찻잔을 집으로 가져오는 경험’이라는 콘셉트로 관광객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외교의 순간을 지역 산업으로 연결한 창의적 사례다.
황남빵과 오감차, 두 이야기는 닮아있다. 하나는 달콤한 손맛으로, 다른 하나는 절제된 향으로 한국의 환대와 정성을 전했다. 이 두 장면은 경북이 ‘포스트 APEC 관광’을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그 순간을 기억으로만 남길 것이 아니라, 관광 자원으로 확장해야 한다. 부산의 누리마루 APEC하우스가 회의장을 넘어 기념공간이 되었듯, 경북도 APEC의 맛과 향을 함께 보존해야 한다. 황남빵과 오감차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엮는다면 관광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외교의 순간을 체험하는 방문자’가 될 것이다.
관광은 ‘기억을 설계하는 산업’이다. 정상의 한마디, 한 잔의 향, 한 조각의 맛이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고 지역의 브랜드가 된다.
박철호·한국관광공사 부산울산경남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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