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산울림 김창훈 ‘회상’
떠밀리듯 노인대열에 합류한 내 친구는 젊은이들끼리 쓰는 언어에 불만이 많다. “님 좀 짱인 듯. 대체 무슨 말이야?” 나는 통역사라도 된 양 행세한다. “멋있는 분이란 얘기야.” “그걸 왜 그렇게 말해?” “옛날엔 우리도 선생님들 못 알아듣는 표현 많이 썼잖아.” 시대 유감형 질의응답이 오가고 커피가 식을 즈음이 되자 이 친구 나한테 웃으며 말한다. “님 좀 짱인 듯.”
영상실습 첫 시간에 대문짝만하게 칠판에 썼다. “짱과 찡, 두 글자를 기억하자. 짱은 눈과 귀를, 찡은 가슴을 터치하는 거다. 시작할 땐 짱, 하지만 끝은 찡하게 마무리하자.”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다. 감탄으로 시작해 한탄으로 끝나는 경우가 좀 많은가. 명언을 쏟아내던 입술이 망언을 일삼는다. “저 사람 왜 저러지?” “명상이 명언을 낳고 망상이 망언을 낳는 거지 뭐.” 말장난에 적응이 늦던 내 친구도 오랜 학습(가스라이팅)의 결과물을 드디어 내놓는다. “그럼 묵상으로 묵언수행. 이게 답이네.” 이번엔 내가 그를 치켜세운다. “님 좀 짱인 듯.”
대학 졸업을 앞두고 싱숭생숭하던 시절 아르바이트로 장만한 별표 전축(오디오세트)은 나의 보물 1호였다. 고교, 대학을 같이 다닌 후배(이근홍)가 나한테 주는 졸업선물이라며 LP 한 장을 건넸다. “기계공학과 친구(김창익)가 형들이랑 음반을 냈는데 심상치가 않아요.” 표지부터 남달랐다.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 같은데 대학을 졸업한 맏형(김창완)이 그렸다고 했다. 턴테이블이 움직이자 눈과 귀도 따라서 움직였고 ‘아니 벌써’ 음악은 심장 속까지 파고들었다.
무적의 3형제는 방송사로 돌진한다. 그리고 당당히(당연히) 가요제 예선을 초토화한다. 1등은 첫째(김창완) 작사 작곡 ‘문 좀 열어줘’, 2등은 둘째(김창훈) 작사 작곡의 ‘나 어떡해’. 그런데 호사다마. 첫째가 이미 졸업생이라 자격 시비가 생겼다. 우리 어떡해. 결국은 셋 다 빠지기로 한다. 둘째가 활동하던 동아리(샌드페블즈)는 본선에서 ‘나 어떡해’로 대상을 받는다. 이것이 대학가요제의 시작(1977)이었다.
조용히 지내던 둘째 김창훈이 갑자기 뉴스에 등장했다. 조용히 산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안 한 삶이 아니었다. 직장을 다니며 글을 써서 책을 냈고 그림을 그렸다. 2인 전시회(Art beyond Fame)도 열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신 분들도 계실 거다. 이 조합은 뭐지? 파트너가 김완선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데뷔곡이 ‘오늘 밤’(1986)인데 그 곡의 작사 작곡자가 김창훈이다. ‘나 오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그 시절 방송가엔 이런 유행어가 돌았다. “네 눈이 더 무서워.” 외모 비하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 그 두 눈엔 우주가 들어있었다.
산울림의 문화사적 공적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2집 타이틀)로 간추릴 수 있다.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이런 바람을 삶 속에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밝혀진 대로 김창훈은 무려 1000개의 시에 곡을 붙였다. (님 좀 짱인 듯) 이게 가능한 일인가. 소식을 접하니 1000년 명산이 떠오른다. 그 산 그 울림. ‘한발 두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받쳐라.’(송창식 ‘토함산’)
지난 토요일(15일) 김창훈의 단독 음악회가 열렸다. 공연 제목(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을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로 시작하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끝줄에서 따 왔다. 공연장 끝줄에서 인생을 외로운 길처럼 느꼈을 방문객(관객)들은 귀가하면서 혹시 이 노래를 되뇌지 않았을까.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네.’(김창훈 작사 작곡 ‘회상’)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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