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처음으로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진 1995년 6·27 선거는 김종필 전 총리에게 매우 중요했다. 자민련을 창당해 처음 치러지는 선거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내야 정치적 생존이 보장됐다. JP는 첫 유세 날 ‘충청 핫바지론’을 들고나왔다. 딱 한 번 핫바지 얘기를 했을 뿐인데 파장이 매우 컸다. 충청 지역 정서를 자극해 결국 15개 광역단체장 중 4곳을 석권했다.
또, 이 선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 등권론’을 들고나왔다. 모든 지역이 동등하다는 것을 얘기한 것인데 지역 차별을 언급하지 않고도 차별을 부각할 수 있었다. 광역단체장 5곳을 차지했다.
‘단어가 현실을 구성한다’는 인지언어학의 분석처럼 정치는 누가 네이밍을 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정반대로 바뀌기도 한다. 검찰수사권 조정을 ‘검수완박’, 부동산 세제 개편을 ‘부자감세’로 부르면 뉘앙스가 전혀 달라진다. ‘국정농단’ ‘적폐청산’ ‘조국 사태’ 등으로 네이밍 하면 이미 다른 주장을 하더라도 잘 먹히지 않는다. 첫 번째 네이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을 연기하는 법안을 재판연기법이 아니라 ‘국정안정법’이라고 네이밍 했다. 49개 부처 공무원들에 대한 내란 협조 여부 감찰을 시작하면서 총리실은 이를 담당할 조직의 이름을 ‘헌법존중 정부혁신TF’라고 명명했다. 이름만 보면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 정부에 협조한 공무원들을 색출해 내는 것이다. 헌법(제17·18조)에 통신 비밀의 자유를 명시해 놓았는데 TF에 공무원들의 휴대전화를 일방적으로 볼 수 있는 권한을 주면서 ‘헌법 존중’이라는 네이밍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장동 민간업자에 대한 항소 포기 사태에 대해서도 네이밍 전쟁은 치열하다. 국민의힘과 한동훈 전 대표는 ‘혈세도둑’ ‘대장동 일당 재벌 만들기’ ‘우리가 김만배다’처럼 국민이 직접 본 피해를 부각하기 위한 네이밍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무죄 만들기 주장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은 ‘검찰 항명’ 등 검찰의 반발을 부각해 수사권 박탈의 명분을 삼으려 한다. 초반 네이밍 전쟁은 여론조사로 보면 48 대 29(한국갤럽)로 항소 포기 부적절이 높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