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3조 투자 뒷받침 어떻게
① 금산분리 완화로 CVC 강화
② ‘노란 봉투법’ 보완입법 시급
③ R&D세액공제 등 보조금 확대
④ 원전 확대 등 전력수급 안정
⑤ 로봇·자율주행 법제도 확충
인공지능(AI)·반도체·전기차·우주·원자력발전 등 신산업 경쟁이 국가 간 총력전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이 향후 5년간 803조 원을 웃도는 역대 최대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규제개혁 없이는 투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핵심 이유로는 성장을 이끌어야 하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꼽힌다. 투자의 불씨를 신산업 성장과 기술 혁신으로 옮겨붙게 하려면 인허가, 금융, 노동 등 단단히 뿌리 내린 ‘전봇대 규제’ 족쇄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재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핵심 병목 요인은 환경영향평가 및 각종 인프라 인허가 절차 장기화로 압축된다. 한국의 환경평가 소요 기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대비 최대 3배에 달한다는 게 산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9년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했지만,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등에 발목이 잡혀 터파기 작업을 진행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팹, 배터리 공장 등은 전력·용수·교통·부지·송전망 등 대규모 기반시설을 동원하기 때문에 이 같은 규제 지연 여부가 투자 타이밍을 좌우하게 된다.
대기업이 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과 동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확대가 필요하지만, 출자 한도·대출·차입 규제 등이 여전히 촘촘해 실질적으로 미국·일본 대비 활동 폭이 좁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경영학회장을 지낸 김재구 명지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업 차원에서 개방형 혁신 사업화 및 복합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금산분리를 완화해서 CVC를 더 강화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 유연성 확보를 위해 국회 문턱을 넘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법 통과 이후 현대제철 하청 계열사 등에서 실제 소송이 속출하고 있다”며 “산업군마다 1·2·3차 협력 벤더들이 있는데 원청 대상으로 계속해서 소송이 잇따르면 투자 혁신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AI 시대를 맞아 제조·서비스 혁신 속도가 빨라진 만큼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 감가상각 특례, 국가전략산업 중심의 보조금 확대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인센티브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규모별로 규제가 누진되는 상황”이라며 “중소기업들이 성장을 꺼리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반도체·AI 투자 확대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전력 수급 안정이 꼽힌다. 송전망 확충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전기요금 인상 압력은 기업 부담을 키우는 요인인 만큼 중장기적으로 원전 활용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산업계는 평가했다. 로봇을 활용한 신산업 대부분이 기존 법체계와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로봇 안전기준, 자율주행 책임 범위 등 현재 관련 핵심 제도가 미비해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먼저 실증하고 국내로 역수입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5년 동안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자금 조달이 필수적이며, 주식이나 채권 발행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규모”라며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비롯해 중장기적으로 국내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상법, 중대재해처벌법 등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이예린 기자, 노유정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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