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각국의 감기 특효 음식
사계절 옷차림이 공존하는 요즘이다. 낮엔 반팔이, 아침저녁이면 두툼한 외투가 등장한다. 일교차가 커지는 환절기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으니 바로 감기다. 기침과 콧물, 미열 등 감기 증상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여행 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낯선 의료 시스템을 파악해 병원을 찾기도 번거롭고, 병원 대기실에서 허비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그렇게 여행자는 각국의 ‘현지식 감기약’을 만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여행의 추억을 남긴다.
핀란드의 겨울 여행에서 몸살감기에 시달리던 날, 숙소 주인은 “핀란드 사람들은 감기에 이걸 먹는다”며 하얀 죽 같은 음료를 내밀었다. 얇게 썬 양파를 우유에 넣고 천천히 끓인 ‘양파우유(Sipulimaito)’였다. 생경한 이름과 달리, 향은 부드럽고 맛은 의외로 달큼했다. 항산화 물질과 비타민C를 운운하기 전에, 이방인의 건강이 염려되어 직접 끓여준 정성만으로도 절반은 나은 듯했다.
인도에서는 ‘황금우유(Golden Milk)’가 감기 해결사다. 따뜻한 우유에 강황·생강·후추·꿀을 넣어 금빛을 띠는데, 강황의 항염 효과 덕분인지 몸이 속부터 데워지는 기분이 든다. 러시아의 ‘고골모골(Gogol-Mogol)’ 역시 우유에 계란과 꿀, 버터를 넣어 부드럽게 끓인 음료로 단백질을 보충해 면역력을 높인다.
프랑스와 독일의 민간요법은 한층 낭만적이다. 레드와인에 오렌지와 계피, 정향을 넣고 끓인 ‘뱅쇼(Vin chaud)’와 ‘글루바인(Gluhwein)’. 겨울을 이겨내는 상징 같은 음료다. 향긋한 향과 은근한 알코올의 온기 덕인지, 감기 기운도 사라지는 듯하다. 독일에서는 용도별로 세분화된 허브티 역시 의약품처럼 여겨진다. 차 한 잔이 곧 처방전인 셈이다.
미국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병원 예약은 기본이 1∼2주 전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보니, 웬만한 감기는 ‘닭고기 수프’로 이겨낸다. 닭 육수에 채소를 넣고 푹 끓인 수프는 수분과 전해질, 단백질을 한 번에 보충한다. 감기로 입맛을 잃었을 때도 부담 없이 먹기 좋다. 브라질에서는 매콤한 돼지고기·콩 스튜인 ‘페이조아다(Feijoada)’로 땀을 내 체온을 올리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서양이 ‘영양 보충’에 집중한다면, 동아시아는 ‘몸의 균형 회복’에 방점을 둔다. 중국의 파차는 파뿌리에 인삼·황기·생강·감초를 더해 끓여 냉기를 몰아내는 처방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청주를 데운 뒤 달걀과 꿀을 섞은 ‘달걀술’로 콧물과 인후염을 달래고, 칡뿌리를 달인 갈근탕으로 해열·근육통을 가라앉힌다. 한국의 배숙은 배에 꿀과 생강을 넣어 중탕한 것으로 기관지와 기침에 좋고, 유자차와 생강차는 지금도 ‘집에서 하는 가장 흔한 처방전’으로 남아 있다.
세계 곳곳의 민간요법을 돌아보면 고대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의 말, “음식이 약이 되게 하라”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꿀과 강황 같은 항염·항산화 식품,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과 채소, 회복에 필요한 단백질,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온기. 감기에 대한 사람들의 지혜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고, 그 방향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과학이 뒤늦게 이를 증명해 왔을 뿐이다. 감기는 결국 시간이 약이다. 병원에 가면 일주일, 집에서 쉬면 7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자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 시대를 넘어 내려온 이 단순한 처방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믿음직한 민간 비법이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한 스푼 더 - 민간요법과 과학 사이
민간요법과 현대 과학의 경계는 생각보다 가깝다.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진통제 아스피린의 시작은 실험실이 아니라 강가였다. 고대인들은 버드나무 껍질을 씹으면 두통이 가라앉는다는 경험적 지혜를 갖고 있었다. 이 성분은 19세기 말 독일 제약사 연구실에서 ‘아세틸살리실산’이라는 현대 의약품으로 정제됐다. 이후 그 작용 원리를 규명한 연구는 198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한 알의 약 속에 민간요법과 과학이 얼마나 깊게 연결돼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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