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유럽은 지난 수년간 세계에서 가장 과감한 탈탄소 정책을 추진해 왔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 감축 강화는 기후위기 대응의 선도적 역할을 해왔지만, 동시에 산업 경쟁력 약화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에너지 전환을 본격화하는 시점에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신호다. 기후목표의 당위성과 산업 경쟁력의 현실 간에 균형을 잡아야 함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유럽연합(EU)이 내놓은 청정산업딜(CID)은 이러한 고민이 집약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기후정책을 지속하면서도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려는 시도이며, 탈탄소의 속도와 산업의 생존 능력을 함께 고려한 조정 노력이다. 유럽 내부에서도 ‘환경목표만 앞세우면 오히려 산업 기반이 흔들린다’는 현실적 문제의식이 퍼지고 있다. 이탈리아 총리가 녹색정책이 지나치게 강화될 경우 “산업 공동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현실을 보면 이 문제는 더 긴박하게 다가온다. 우리 경제는 제조업 비중이 크고, 에너지 가격과 수급 구조에 특히 민감하다. 최근 확정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국제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산업계가 체감하는 부담은 절대 작지 않다. 이제 필요한 논점은 목표의 높고 낮음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확정된 목표가 산업과 경제의 지속성을 해치지 않도록, 이행 경로와 속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세밀한 전략이 핵심 과제다.

유럽이 겪고 있는 문제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기요금 상승, 에너지 조달 리스크, 생산시설 해외 이전 논란 등은 탈탄소 정책이 현실과 엇박자를 낼 때 발생하는 파급효과다. 물론 우리나라가 유럽과 같은 길을 걷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산업 구조도 다르고 정책 환경도 다르다. 그러나 위험을 실제로 목격한 이상,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순하다. 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도록 사전에 대비하는 것, 그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확정된 목표를 국내 산업이 견뎌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적 조율이다. 산업별·공정별 감축 가능성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기술 도입과 설비 전환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기후목표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이행 과정의 부담을 조정하는 세심함이 절실하다.

또한, 기후정책과 산업정책을 별개의 영역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기업이 전환 과정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기술 개발 지원과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장기 투자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탈탄소가 기업에 ‘리스크’로만 받아들여질 경우 산업은 방어적으로 움직이며 경쟁력은 점차 약화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다. 유럽의 경험은 목표의 고저보다 실행의 설계가 국가경제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기후목표와 산업 경쟁력이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 확정된 NDC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산업의 기반을 흔들지 않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정책이 지향해야 할 균형점이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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