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30%로 치솟아…비상장사의 7배 달해
주력사엔 등기이사·규제사엔 미등기로 이중전략
대기업 총수일가가 주력회사에서는 등기이사로 전면에 나서지만,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서는 미등기임원으로 활동하는 비율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로는 책임경영 강화 모습이지만, 감시 사각지대에서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중전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9일 발표한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77개 기업집단 2844개 소속회사 중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회사는 198개사(7.0%)로 전년 대비 1.1%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상장사의 경우 총수일가 미등기임원 재직 비율이 29.4%로 전년(23.1%) 대비 6.3%포인트나 급증해 비상장사(3.9%)의 7배가 넘는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2022년 분석 이후 최고치다.
분석 결과 총수일가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주력 상장사에는 등기이사로 대거 등재되면서도,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서는 미등기임원으로 물러나는 이중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력회사 154개사 중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경우는 44.2%(68개사)로 전체 평균(18.2%)의 2배가 넘었다. 총수 본인이 주력회사 이사인 경우도 26.6%(41개사)로 전체 평균(5.7%)의 4배를 웃돌았다.
반면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직위 259개 중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가 141개(54.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전년(119개, 54.1%)보다 증가한 수치다. 미등기임원 겸직이 많은 집단은 중흥건설(1인당 7.3개), 한화·태광(각 4개), 유진(3.8개), 한진·효성·KG(각 3.5개) 순이었다.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비율이 높은 집단은 하이트진로(58.3%), DN(28.6%), KG(26.9%) 등이었다.
음잔디 공정위 기업집단관리과장은 미등기임원은 경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등기임원과 달리 상법 등에 따른 법적 책임과 의무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의 괴리가 문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7월 개정된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또한 미등기임원인 총수일가가 늘어나면 개정 법의 실효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총수일가가 등기이사인 회사도 전체 18.2%(518개사)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전체 등기이사 중 총수일가 비율은 7.0%(704명)로 2021년 5.6%에서 꾸준히 늘었다. 이는 책임경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등재된 계열사 비율이 높은 집단은 셀트리온(88.9%), 부영(85.7%), 영원(82.4%), 농심(80.0%), DN(71.4%) 순이었다.
대기업 이사회의 감시·견제 기능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 9,618건 중 99% 이상(9,581건)이 원안 가결됐다.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 비율은 0.38%로 최근 5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상장사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은 51.3%로 법정 기준(44.2%)을 상회했지만, 총수 있는 집단(51.0%)이 총수 없는 집단(55.0%)보다 낮았다. 총수 있는 집단은 보상위원회와 감사위원회 설치 비율도 총수 없는 집단보다 각각 9.5%포인트, 9.3%포인트 낮았다. 분석 결과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이 높을수록,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가 적을수록 원안가결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사외이사 비율 25% 미만 상장사는 모든 안건이 원안 가결(100%)된 반면, 75% 초과 상장사는 95.51%로 4.49%포인트 낮았다.
소수주주의 경영감시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중투표제는 상장사의 96.4%가 정관으로 배제했고, 실제 실시한 사례는 3년째 1건(영풍 소속 고려아연)에 그쳤다. 전자투표제 도입률은 88.1%로 높았지만, 소수주주가 실제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서면투표제를 통한 소수주주 의결권 행사 비율은 0.9%로 전년(3.2%) 대비 2.3%포인트나 급감했다. 주주제안권, 주주명부 열람청구권 등 소수주주권 행사 건수는 93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지만, 전체 361개 상장사 중 21개사(5.8%)에서만 행사됐다.
공정위는 올해 개정된 상법이 지배구조 개선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개정 상법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2026년 9월 시행), 상장사의 사외이사 의무 선임 비율을 1/4에서 1/3로 확대했다(2026년 7월 시행). 감사위원회 감사위원 분리선출도 1명에서 2명으로 확대되고, 전자주주총회 도입도 의무화된다. 공정위는 개정 상법 시행 시 집중투표제 도입 회사가 현재 13개사(3.6%)에서 162개사(44.9%)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음 과장은 이사회 및 이사회 내 위원회의 감시·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시장감시가 중요하다며 개정 상법의 독립이사 제도와 사외이사 의무 선임 비율 확대 등이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총수일가의 미등기임원 증가 추세가 개정 상법의 실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총수일가가 감시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권한을 남용하는지 면밀히 감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분석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92개 중 86개 집단 소속 2,994개 회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를 분석 기간으로 했다. 올해 신규 지정 5개 집단과 특별법으로 설립된 농협은 제외됐다.
장상민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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