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일기자의 여행 - 초겨울에 가면 더 좋은 남녘의 끝 ‘고흥’

 

구암리 해식절벽끝 기묘한 바위

출입금지 지역으로 엄격히 통제

육로 없어 배 타야만 볼 수 있어

 

2021년 ‘명승’ 지정된 금강죽봉

바닷가에 솟은 주상절리 압도적

고흥군 ‘탐방로 개설’ 적극 추진

 

산지서만 맛보는 진미 ‘삼치회’

양념간장과 함께 김에 싸 먹어

나로도항 수산물 경매도 볼거리

 

2년생 굴 진하고 깊은향도 한창

풍양면 일대 유자로 온통 노란빛

마들렌 식감 ‘유자빵’ 새 명물로

고흥의 숨겨진 명소인 활개바위. 직벽 해안에 솟아 있는 구멍 뚫린 바위다. 주변 지형이 워낙 험해서 접근하기 어렵다. 활개바위의 진면목을 보려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고흥의 숨겨진 명소인 활개바위. 직벽 해안에 솟아 있는 구멍 뚫린 바위다. 주변 지형이 워낙 험해서 접근하기 어렵다. 활개바위의 진면목을 보려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고흥=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활개바위’라고 들어보셨는지. 또 ‘금강죽봉(金鋼竹峰)’을 아시는지…. 만일 ‘마지막 남은 비경’이란 목록이 있다면, 이들 두 곳이야말로 기꺼이 목록의 순위 맨 앞에 나란히 올릴 법한 곳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남김없이 발견되고 공유되는 시대에도, 이 두 곳은 가장 늦게까지 숨어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여기가 수도권에서 멀고 먼, 남녘 끝의 전남 고흥(高興)이기 때문이다. 고흥은 멀어서 자주 갈 수 없는 곳이다. 바꿔 말하자면 기왕 다녀온다면 ‘가장 적당한 때’를 겨눠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고흥에 가야 할 때는, 딱 지금이다. 지금 고흥에는 제철인 것들로 가득하다. 풍양면 유자공원에는 잘 익은 유자가 흔전만전이고, 나로도항 경매장에는 팔뚝보다 굵은 삼치가 줄 맞춰 누웠다. 내나로도의 구룡마을에서는 굴이, 도화면 발포에는 곱창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고흥은, 풍경과 맛 그리고 이야기로 익어간다.

# 때를 맞춰 고흥에 가야 하는 이유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활개바위는 고흥 도화면 구암리 동쪽 해식 절벽 끝에 만들어진 기묘한 지형의 바위다. 높이는 15m로 석문(石門)처럼 바위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기묘한 형태다.

활개바위가 알려지지 않았던 건 이 기이한 바위가 벼랑 끝에 있어서, 육지에서는 아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활개바위를 보려면 물때를 맞춰야 하는 데다 직벽의 아슬아슬한 바위를 밧줄을 잡거나 곡예하듯 타고 내려가야 한다. 그게 워낙 위험해서 출입금지 지역으로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데, 눈을 피해 바위 쪽으로 들어갔다가 조난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전한 탐방로를 새로 조성하지 않는 이상, 활개바위는 배를 타야만 볼 수 있다.

지난 2021년 명승으로 지정된 도화면 지죽리의 금강죽봉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금강죽봉은 바닷가에 솟은 거대한 응회암 주상절리다. 압도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명소지만 안전을 이유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곳 역시 통제를 무시하고 들어갔다가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적잖다.

이 두 곳은 갈 수 없지만, 언제까지나 닫혀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고흥군이 이들 명소에 탐방로를 개설하는 데 어느 때보다 더 적극적이어서다. 자연훼손에 대한 우려가 남지만, 팔영산의 일부 탐방코스를 막는 식으로 ‘총량제’를 적용한다면 개방 못 할 이유는 없다.

# 지금이 제철… 고흥에 가는 이유

봄꽃 명소나 단풍 명승처럼 절기에 따라 뛰어난 경관을 보여주는 여행지가 있다. 이른 봄 매화 피는 섬진강. 요즘 단풍이 한창인 내장산. 뭐 이런 곳이다. 이런 곳들은 말하자면 ‘제철이 있는’ 여행지다. 바뀐 계절에 그 계절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여행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삶에서도 그렇듯이 계절과 변화는, 여행에도 적당한 긴장과 탄력을 부여하니까.

제철 여행지란 꼭 봄꽃이나 단풍 같은 경관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거기서 나는 먹거리의 출하 시기가 제철을 규정하기도 한다.

지금 고흥에서 제철인 것 중의 대표는 단연 삼치다. 이제는 모르는 이가 드물지만, 남도의 바닷가에서 삼치는 회로도 먹는다. 두툼하게 썰어낸 삼치의 부드러운 살의 식감이 그만이다. 입안에서 무너지듯 녹는 맛은 다른 생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먹는 법도 여느 회와 다르다. 다진 쪽파와 고춧가루를 넣은 양념간장을 찍어서 김에 싸서 먹는다.

고흥에서도 삼치로 알아주는 곳은 나로도다. 삼치가 많이 잡히기도 하지만, 삼치 회를 내는 식당도 여럿이다. 삼치는 산지(産地)에서 맛을 봐야 한다. 삼치는 잡자마자 죽는데, 죽은 삼치를 회로 먹으려면 얼음에 채워서 적정온도에서 잘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삼치잡이 배가 고기를 내려놓고, 이렇게 내려놓은 삼치를 하루 두 번 경매에 부치는 나로도만 한 곳이 또 있을까.

나로도에서 삼치를 맛볼 수 있는 식당 중에서 추천하는 곳은 ‘서울식당’이다. 서울 종로경찰서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전직 경찰 출신 아버지가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순전히 아내의 음식 솜씨를 믿고 식당 문을 열었고, 그걸 미국 유학을 하고 돌아온 아들이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사장은 아들이지만, 아직도 주방은 어머니가 지킨다. 근래 최근 신축건물로 가게를 옮겼는데 피로연을 해도 될 만큼 크고 번듯하다.

서울식당에는 삼치 코스요리 메뉴가 있다. 코스요리를 주문하면 삼치 회는 물론이고 삼치 탕수, 삼치조림까지 낸다. 따로 삼치구이도 메뉴에 있다. 평소 밥상에 자주 올리는 메뉴라 삼치구이를 별스럽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쪽 팔보다 더 큰 삼치를 토막 내서 구운 삼치구이는 기름진 맛이 아예 다르다. 일손이 바쁘지 않으면 남은 회로 삼치 전을 부쳐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삼치의 모든 것을 다 맛보는 셈이다.

# 나로도항 수산물 경매를 보는 재미

외나로도에 있는 나로도항에서는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1시 30분에 참치를 비롯한 수산물 경매가 이뤄진다. 다른 어항에서는 경매가 이른 새벽에 이뤄지는 게 보통인데, 여긴 경매 시작이 늦다. 육지와의 거리 때문이다. 고기를 사러 오는 도매업자들이 나로도까지 들어오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경매시간을 앞당길 수 없다는 사정이 있다. 경매가 늦게 시작되는 게 여행자들에게는 반갑다.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느긋하게 경매 모습을 볼 수 있어서다.

나로도 항의 수산물 경매는 여행자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볼거리다. 나로도항의 경매는 다른 지역 어항의 경매와는 좀 다르다. 고깃배가 들어와서 경매장 바닥에 수산물을 늘어놓는 것이나 경매를 부치는 방식은 같은데, 경매사가 가격을 부르는 게 다른 어항과는 다르다. 보통 경매장에서는 경매사의 암호에 가까운 발성과 손짓으로 도대체 뭐가 얼마에 낙찰됐는지 알 수 없는데, 나로도항에서는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다.

경매를 지켜보면 커다란 삼치 한 궤짝이 경매에서 얼마를 받았는지, 병어 열 마리의 오늘 도매시세가 얼마인지 다 알 수 있다. 동네 마트에서의 소매가격을 알고 있다면 경매 가격이 잘 믿기지 않는다. ‘아니, 저걸 저 가격에….’ 저절로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경매장 한쪽에는 경매받은 수산물을 좌판 가득 늘어놓고 소비자들에게 파는 상인들이 있다. 상인들이 이윤을 붙이긴 했지만 경매가격을 아는 소비자들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만한 가격이다. 삼치 1㎏에 1만5000원, 손바닥보다 훨씬 큰 병어 10마리에 7만 원, 갈치 한 무더기에 4만 원…. 특히 올해는 병어가 많이 잡힌단다. 좌판에서는 홍어와 열기, 준치와 도미도 보였다.

삼치잡이 배는 크지 않다. 길이 10m가 넘는 돛대처럼 생긴 장대 2대가 세워져 있는 5~6t짜리 배가 있다면, 그게 바로 삼치잡이 배다.

장대 2개를 좌우로 벌리고 한쪽에 네댓 개씩의 낚싯바늘을 매달고 바다를 달리면, 삼치가 가짜 미끼를 문다. 그걸로 대체 얼마나 잡을까 싶었는데, 배에서 끝없이 꺼내놓는 삼치의 크기와 상자 숫자를 보곤 입이 딱 벌어졌다.

# ‘나라섬’ 이었던 나로도 이야기

고흥 나로도(羅老島)란 지명은 ‘나라도’에서 나왔다. 지금이야 우주선 발사기지 덕에 고흥보다 더 유명해졌지만, 300여 년 전 나로도는 이름조차 없었다. 그저 나라에서 말을 키우는 자그마한 섬이었을 따름이다. 한문을 깨친 사람은 국도(國島)라 불렀지만, 언문식으로는, 그냥 ‘나라섬’이나 ‘나라도’였다. 지금도 60대 이상의 고흥사람들은, 십중팔구 그렇게 부른다.

이렇게 변변한 이름조차 없던 나라도가, 300년 전 조선왕조실록에 ‘나로도’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실록에서 나로도는 당쟁의 시대에 ‘반역의 수괴’를 유폐하는 귀양살이의 섬으로 등장한다. 나로도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로 나뉘는데, 실록에 나오는 건 내나로도다.

조선 경종시대 노론 4인방 중 하나인 이건명.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쯤 되는 좌의정 벼슬의 그가 반역죄로 몰려 나로도로 유배된다. 병약한 경종 대신 차기 왕권계승자였던 연잉군(훗날 영조)을 옹립하려다가 반대파로부터 ‘경종 축출을 노린 계략’으로 음해당했던 것. 혐의가 좀 약해 보였던지 반대파는 나중에 ‘자기 사촌 형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는 혐의를 덧씌웠다.

이건명뿐만 아니었다. 노론을 이끌던 4인방은 죄다 섬으로 유배를 당했다. 영의정 김창집은 거제도로, 우의정 조태채는 진도로, 판중추부사 이이명은 남해도로 갔다. 거제나 진도, 남해도는 그나마 유배지로 이름이나마 알려졌던 곳. 이건명이 가야 했던 고흥의 나로도는 금시초문의 섬이었다.

나로도 귀양은 이건명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지명만 보고 고흥의 ‘사도(蛇島)’로 보냈는데, 그게 섬이 아니라 영남면의 작은 해안 마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소동 끝에 부랴부랴 바꾼 유배지가 나로도였던 것이었다. 사도에서 나로도로 유배지를 옮긴 얘기가 경종실록에 나온다. 1722년 음력 4월 5일의 일이었다.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고흥의 명소 금강죽봉. 해안가에 솟은 거대한 주상절리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고흥의 명소 금강죽봉. 해안가에 솟은 거대한 주상절리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 처참했던 죽음. 그리고 덧없음

숙종에서 경종으로 이어지던 시대에 당쟁이 극심했다. 죽느냐 죽이느냐의 싸움이었다. 보복과 계략으로 피가 튀었다. 정치생명뿐만 아니라 진짜 생명까지 걸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노론 4인방 중 3명이 사약을 받았다. 사약은 점잖은 편이었다. 나로도에 있던 이건명은 가장 비참하게 죽었다. 옷을 모두 벗기고 마을 주민들을 매수해 쇠꼬챙이와 뾰족한 칼로 온몸을 여러 번 쑤시게 해서 오랫동안 고통을 준 뒤에야 비로소 목을 베었다.

말 그대로 능지처참(陵遲處斬)이다. 능지(陵遲)란 ‘구릉이 오랜 세월에 걸쳐 평지가 된다’는 뜻. 그만큼 오랜 시간을 말한다. 처참(處斬)은 목을 베어 죽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능지처참의 형벌에는 ‘오래도록 고통을 주면서 죽인다’는 끔찍하고 잔혹한 뜻이 새겨져 있다. 이건명은 그렇게 죽었다.

이건명은 왜 그리 미움을 샀을까. 그 사연은 경종의 왕위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동생 연잉군(영조)이라는 걸 추인받으러 이건명이 청나라에 갔을 때 얘기에서 시작한다. 청나라는 의아해했다. “경종 나이가 아직 30대 초반이라 자식을 볼 수 있는데, 왜 동생을 후계자로 내세우려 하느냐”며 추인해주지 않으려 했다. 다급해진 이건명. 청나라를 설득하다가 “경종은 양기가 부족해 남성구실을 못하니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얘기까지 했다. 결국 청나라로부터 추인을 받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불임설을 청나라까지 가서 거론한 행태에 경종은 격노했다. 그게 결국 이건명의 처참한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건명이 참형 당한 지 2년 뒤에 경종은 병으로 급사했다. 연잉군이었던 영조가 즉위하면서 자신의 편에 섰던 이건명을 비롯한 노론 대신들을 복권했다. 하루아침에 ‘사흉(四凶)’이라 불렸던 노론 4대신은 ‘사충(四忠)’이 됐다. 나로도에는 이건명을 모신 덕양서원이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서원이 고즈넉하게 앉아있다. 나로도에 들렀다면 가볼 만한 곳이다. 당쟁에 휘말린 삶이 덧없고 또 덧없다.

# 나로도 굴이 품은 진한 맛

내나로도에서는 지금 굴 작업이 한창이다. 덕양서원 앞의 덕흥항 일대는 바지락으로 이름났다. 고흥사람들은 바지락을 ‘반지락’이라고 부르는데, 일대의 바다에서는 ‘알 굵은 반지락’이 지천으로 난다. 바지락은 봄이 제철. 지금은 바지락이 없어 아쉽지만, 대신 이웃 구룡마을에서는 지금 굴이 한창이다.

구룡마을에는 바다를 끼고 금성수산, 구룡수산 등 수산물 가공회사가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양식장에서 바로바로 건져낸 각굴이나 생굴을 팔거나 진석화젓 등을 담가서 판다. 양식장을 부지런히 오가는 배가 굴이 가득 든 그물을 건져와서 바지선 위에다 부려 놓고 있다. 바지선 갑판 위에는 잠깐만에 각굴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렇게 건져낸 굴을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껍데기를 깐다. 능숙한 손길로 굴 껍데기를 까던 이가 큼직한 굴 하나를 까서 입에다 넣어줬다. 짭짤한 바다의 맛을, 깊고 진한 굴 향이 감싸듯 뒤덮었다.

“작년에 넣어둔 것도 있고, 올해 8월에 넣은 것도 있어요. 맛의 차이요? 다 맛있어요. 바람이 차지니까 이제 굴 맛이 제법 들었어요.”

우리가 먹는 굴은 대부분 1년생이다.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 하나. 굴은 1년생은 모두 수컷인데, 2년째부터는 자동으로 암컷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수컷일 때의 1년생 굴이 맛있을까, 아니면 암컷으로 변한 2년생의 굴이 더 맛있을까. 보통 2년생 이상 자란 암컷이 1년생 수컷보다 낫다. 비린 맛도 덜하고, 풍미도 더하다. 그렇다면 1년생과 2년생은 어떻게 구분할까. 씻거나 먹을 때 흔히 ‘우유’라고 부르는 흰 액체가 많이 나오는 게 1년생이다. 2년생은 살이 더 실하고, 비린 맛도 나지 않는다. 굽거나 익히면 맛의 차이는 더 크다.

내나로도의 구룡마을은, 나로도를 오가면서 들러서 방금 깐 굴을 맛보거나 사 들고 가기 딱 좋다. 고흥까지 가서 2년생 굴의 진하고 깊은 향을 놓칠 수 없는 일. 그냥 주는 대로 받지 말고, 좀 더 비싸긴 해도 2년생으로 달라고 주문해보자.

# 섬에서 유자 빵을 굽게 된 사연

지금이 제철인 고흥의 특산물 중에는 유자도 있다. 유자 공원이 있는 풍양면 일대는 익어가는 유자로 온통 노랗다. 사실 유자는 가공 없이 그대로 먹을 수 없는 과실이라 제철의 감흥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여기는 어떨까. 고흥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는 내나로도의 ‘유자제빵소’ 얘기다.

유자제빵소는 도무지 빵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아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시골 마을 외딴곳에 있다. 주소를 들고도 과연 손님이 찾아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의외로 순전히 관광객 손님만으로도 제법 장사가 잘된단다. 유자제빵소의 대표는 지역 특산물인 유자를 넣어 만든 ‘유자빵’이다. 마들렌 비슷한 식감의 빵인데, 작은 유자 알갱이가 씹히면서 상큼한 맛을 낸다. 향만 내는 다른 유자 빵과는 느낌이 다르다.

유자제빵소를 운영하는 이는 충청북도 1호 제과·제빵분야 명장이자 대한민국제과기능장인 이종화(69) 씨다. 충북 청주에서 빵집과 제과 학원을 50년 가까이 운영해 온 그는, 애초에 고흥에서 빵집을 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빵 굽기를 내려놓고 은퇴한 그는 지난 2023년 고흥 나로도로 귀농했다. 유자나무를 심고 텃밭농사나 하면서 평안하게 노후를 보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별생각 없이 고흥의 특산물인 유자를 넣어 유자 빵을 만들었고, 이 빵을 고흥에서 열린 관광상품공모전에 냈는데 그게 덜컥 최우수상을 받았다. 상을 준 고흥군은 유자 빵의 상품화를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고심 끝에 그는 지난 5월 29일 귀농한 농가에 빵집을 냈다. 그저 ‘즐겁게 만들 수 있을 만큼만’ 빵을 구워 팔자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이 외진 섬마을의 오지에 유자제빵소가 문을 열게 된 이야기다.

평생 빵을 구워 명장의 반열에 오른 만큼 이 씨가 만드는 다른 빵도 훌륭하다. 직접 농사지은 마늘과 양파로 만드는 갈릭치즈 바게트의 인기는 유자빵 못지않다. 제빵소의 음료를 전담하는 아내 김선아(68) 씨가 내는 유자스무디, 유자크림라테 등도 수준급이다.

■ 고흥 출신 화가 천경자

고흥 출신 화가 천경자의 타계 10주기 리마스터 전시회가 고흥읍 고흥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12월 7일까지. 리마스터 전시란 원화는 아니지만 고해상도 복원 기술로 재현한 레플리카 작품 전시를 말한다. 이번 전시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 중인 작품 40여 점의 저작권을 승인받아 제작했다. 고향 고흥을 담은 유일한 작품이 소록도를 그린 ‘초혼’ 딱 한 점인데, 아쉽게도 고흥전시에 이 작품이 없다.

박경일 전임기자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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