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풍경
사진·글=윤성호 기자
바람이 차가워지면 도시의 길목에서 먼저 계절이 바뀐다. 가로수 잎이 한 장씩 떨어지고, 사람들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기 시작하는 요즘, 도심 한복판 도로에서 이동하던 한 대의 트럭이 붉은 신호에 멈춰 서 있다.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나타났다가, 또 계절이 지나면 사라지는 작은 장터다.
트럭의 철제 판매대에는 각양각색의 두꺼운 양말이 가득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얇은 면양말은 흔적조차 없다. 대신 도톰한 겨울 양말과 이를 담는 비닐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이동 판매 트럭은 늘 계절을 먼저 따라간다. 사람들이 체감 온도로 알기 전에, 기상청의 발표보다 먼저 이 작은 트럭의 진열품이 계절의 변화를 말없이 증명한다.
그 위엔 “품질 업, 가격 다운”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동 판매 차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지만, 요즘은 그 문장이 조금 다르게 읽힌다. 단순한 장사의 구호라기보다, 팔아야 하고, 또 버텨야만 하는 누군가의 하루가 겹쳐진 듯하다.
최근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새출발기금 신청자가 16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전월보다 채무 조정 신청액도 크게 늘었다. 폐업하는 가게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철거 폐기물이 쏟아지면서 관련 업종이 오히려 ‘특수’를 맞았다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늘 보던 “품질 업, 가격 다운”이라는 문구가 이 계절에는 유난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 촬영노트
멈추라는 신호도 지나면 다시 움직인다. 올겨울에는 품질 업, 가격 다운 대신 용기 업, 포기 다운이었으면.
윤성호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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