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경제부 차장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현재 금융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이른바 ‘금융계급제’”라며 금융시장의 수익구조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어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사이의 금리 격차가 커진 현상, 은행·금융사가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으로 손쉬운 수익을 올린다는 점을 지적하며 금융개혁을 예고했다.
대통령의 지적에 대형금융지주사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대통령 발언 기저엔 ‘이젠 매를 좀 맞을 때다’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역대 최대 분기 순익기록 등의 이면엔 부동산 활황기에 서민들로부터 주택담보대출로 손쉽게 이자수익을 내며 집값을 한껏 띄워 놓은 혐의도 있으니 속죄하란 의미다.
하지만 대통령의 금융계급제는 이해하기 어렵다. 금융 시스템에는 ‘계급’은 아니지만 ‘등급’이 엄연히 존재한다. 금융기관은 차주의 신용등급을 기초로 대출 여부와 규모를 결정한다. 소득이 많거나 높은 담보가치를 보유한 차주는 돈을 많이 빌릴 수 있고, 그 반대는 적게 빌린다. 이자도 마찬가지다. 대부이자는 ‘자본을 일시적으로 넘겨주는 대가’이자, 자본의 한정성과 시간가치, 그리고 위험 보상을 포함한다. 시장은 이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시스템을 “약탈적”이라고 규정했다.
사실 대통령의 인식은 고대 종교적 관점과 거의 일치한다. 구약성경(출애굽기 22장 25절)에선 ‘네가 만일 내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거든, 너는 그에게 채권자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라’고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자는 돈의 아주 부당한 자식”이라며 이자 수취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이슬람 경전 샤리아에서는 이자를 ‘리바(Riba)’라고 하며 지금까지도 중동 국가에선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 보호가 없던 고대사회에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도덕규범에 가깝다. 시장경제에서 금융은 산업이고, 이는 제도 속에 있다. 원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고리 수취는 불법이며, 무리한 담보 요구나 기업대출 시 꺾기 관행도 자취를 감췄다. 만일 대통령의 관점에 따른다면 모든 시중 금융기관은 이자수익을 포기하고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해야 한다. 부실을 알면서도 돈을 빌려주는 것은 건전성 유지라는 금융감독원칙에 위배된다. 결국, 대통령은 금융을 복지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저소득·저신용자들에게 대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상 금융기관을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처럼 악마화한다면 금융기관들의 부실은 급증하고 종국엔 자체 신용등급까지 떨어져 국가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금융도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금융기관들을 영리추구 기업이 아닌 사회적 안전망의 한 부분으로 규정한다면 금융기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제조업에 비해 여전히 후진적인 국내 금융시장에 정부가 퍼주기를 위한 관치로 압박한다면 발전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금융시장 원리를 역행해 무리하게 포용적·생산적 금융을 민간에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약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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