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이뤄지는 택배 새벽 배송을 전면 금지하자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노동자 수면 시간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택배 기사들과 소비자들은 일할 권리와 소비자 편익을 침해한다고 비판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에선 새벽 배송이 빠르게 시장 표준이 되면서 쿠팡·컬리 등 새벽 배송 이용자만 2000만 명 이상에 달한다. 반면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해외에선 높은 인건비와 소음·근로시간 규제 등의 영향으로 새벽 배송 시장 자체가 없다. 한국이 세계 유일의 혁신적인 서비스 모델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15조 원 규모로 급성장한 새벽 배송 시장을 두고 불거진 노동계와 기업, 소비자 등 각 이해관계자들의 쟁점과 해외 사례, 시장 상황, 서비스 중단 시 여파 등을 살펴본다.
◇새벽 배송 서비스는= 국내에서 새벽 배송은 2015년 마켓컬리가 ‘샛별 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다. 한국형 새벽 배송 모델의 원조로 꼽히는 샛별 배송은 초기 서울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시작해 수도권·충청권·호남권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어 2018년에는 쿠팡이 ‘로켓 프레시’라는 이름으로 새벽 배송 시장에 뛰어들었다. 쿠팡은 전국적 물류센터 망을 기반으로 새벽 배송 시장 규모와 서비스 지역을 크게 확대했다. 이후 SSG닷컴, 오아시스마켓, 네이버 등 후발 주자들도 가세했다. 새벽 배송은 초기에는 신선식품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점차 의류·가전 등 전 품목으로 확대됐다. 현재 국내 새벽 배송 이용자는 2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쿠팡 와우회원 1500만 명, 컬리 300만 명, 오아시스·SSG닷컴·네이버 200만 명 이상 등이다. 새벽 배송 시장 규모는 2015년 4000억 원에 불과했으나, 성장을 거듭하며 지난해 11조8000억 원, 올해 15조 원 수준으로 커졌다. 특히 맞벌이 부부·1인 가구·영유아 가정 등에서 전날 밤에 주문한 상품을 아침에 받는 쇼핑 경험이 익숙해지며 필수 생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이해당사자별 주장은= 택배노조는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새벽 배송 금지를 공식 제안했다. 당시 노조 측은 “야간 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규정한 발암 물질”이라며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과로사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가능성이 있는 심야노동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노동자 건강권 보호에 무게 중심을 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택배 기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쿠팡 직고용 배송 기사 노조인 쿠팡 노조는 “민주노총의 새벽 배송 금지 추진은 (쿠팡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쿠팡 위탁 택배 기사 1만 명이 소속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도 “수많은 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결정”이라며 비판 성명을 냈다. 배송 기사 2045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93%가 새벽 배송 금지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새벽 배송 시장을 핵심 판로로 활용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들도 “새벽 배송 금지는 정부의 민생경제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해외는 존재하지 않는 시장= 한국의 새벽 배송 시장은 세계 유일의 혁신적인 서비스 모델로 꼽힌다. 해외 주요 국가와 달리 한국은 드물게 새벽 배송 서비스가 빠르게 시장 표준이 되며 사회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수도권에 밀집된 인구와 도심 인근에 집중된 물류센터, 단거리·고밀도 배송이 가능한 지리 구조 등이 결합된 덕분으로 분석된다. 특히 자정부터 오전 5시는 교통 흐름도 원활해 많은 배송 처리도 가능하다. 여기에 쿠팡·컬리·오아시스 등 주요 업체들이 ‘배송 속도’를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서비스 경쟁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반면 미국 아마존·월마트 등은 당일 배송을 확장하고 있지만 국내 새벽 배송에는 못 미친다. 높은 야간 인건비와 소음 규제, 지역별 야간 운행 제한 등이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도시는 오후 10시 이후 택배 트럭 운행도 제한하고 있어, 노동 규제 위반을 의식한 기업들이 굳이 새벽 배송을 추진하지 않는다. EU의 경우 운수 노동자 근로시간 규제가 매우 강한 데다, 높은 물류비·임금 구조, 도심 소음 규제 등의 영향도 있어 새벽 배송이 아예 성립할 수 없는 구조라는 평가다. 일본 택배 배송은 보통 오전 8시 이후부터 시작되며, 편의점·택배 보관함 문화가 발달해 굳이 새벽에 집 앞에 상품이 도착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지난해 ‘운전기사 초과근로 규제’ 시행으로 심야근무 축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중단 시 예상되는 여파는= 전문가들은 새벽 배송이 금지될 경우 소비자 편익 저하와 일자리 감소, 영세 업체 매출 타격 등 연쇄 피해가 빚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동현 중앙대 국제물류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새벽 배송과 주 7일 배송이 가능해지면서 직접 시장 규모 외 6조 원가량의 부가가치가 창출됐다. 또 1만9000명가량 취업·고용 효과도 생겨났다. 물류업계 전문가는 “새벽 배송 금지는 단순한 서비스 제한 차원이 아니라, 수만 명의 일자리 감소와 최대 수조 원 규모의 산업 생태계 붕괴를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신선 물류센터와 포장·패킹 산업, 냉동·냉장창고, 전기차 배송 인프라, 물류 정보기술(IT), 스마트 로봇 물류 등 최대 30조 원 이상 연동된 연관 산업 전반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퇴근 후 장보기가 어려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유아용 분유·기저귀·신선 식재료 등을 새벽 배송에 의존해왔다. 여기에 새벽 배송을 본업으로 선택한 택배 기사들의 수입·일자리 감소 등 생계 위협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