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이후 불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요. 운전 중 전화를 받았는데, 저희 아이가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발로 밟아 부숴서 자기네들이 붙잡아 교육을 좀 시키고 있다고 했어요. 아이가 항의해서 칼로 찌를 수 있으니 돈을 부치라는 이야기를 듣고 돈을 보냈습니다. 전화를 통해 들려준 우는 목소리도 정말 저희 아이 같았어요. 통화하다 알아채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수사에는 진척이 없어요. 그 뒤로 그쪽에서 자꾸 돈을 돌려줄 테니 제 계좌를 알려달라는 연락까지 와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못 잡니다. 보이스피싱을 제가 당하다니 그 자체도 부끄럽고, 친구 중에는 왜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입금하냐는 반응도 있어 속상합니다. 진짜 납치가 아니라 속인 상황인 줄 아는데도, 그 이후는 안전이 위협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때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네요.
A : “왜 확인안했지” 자책 안돼… 증상 지속땐 전문가 상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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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속은 건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입니다. 보이스피싱범들은 인간의 가장 약한 고리인 공포와 사랑을 파고듭니다. 특히 운전 중이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침착한 대처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뇌의 전두엽이 도로 상황을 살피느라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입니다. 이때 아이가 칼에 찔릴 수 있다는 극단적인 공포 자극이 들어오면, 우리 뇌의 편도체에 있는 비상벨이 울리게 되고,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마비됩니다.
이러한 ‘편도체 납치’ 상태에서 돈을 보낸 행위는 논리적인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자식을 살리려는 부모의 조건반사적인 보호본능이었습니다. 그러니 ‘왜 확인 안 했지?’라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때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건, 혹시라도 내가 지체하다가 아이가 잘못될까 봐 두려웠던 부모의 절박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움직인 것입니다.
“왜 확인 안 했냐”는 말에는 상처받으셨겠습니다. 피해에 대한 비난이나 훈계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2차 가해가 됩니다. 범죄의 원인은 오직 사기꾼의 악랄함에 있지, 피해자의 부주의에 있지 않습니다. 이런 사건을 접한 사람들이 “나였으면 안 속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까닭은 다들 자기 불안을 통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은 안전하고 싶다는 방어기제입니다.
스스로에게 먼저 그렇게 말해주세요. “돈은 잃었지만, 우리 아이는 무사하다. 그거면 되었다.” 범인들이 돈을 돌려줄 테니 계좌를 알려달라고 하는 것은 대포통장으로 활용하거나 2차 사기를 치려는 수법입니다. 절대 응대하지 않고, 연결고리를 끊어야 안정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불안은 전염되지만, 안전감도 학습될 수 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못 자는 것은 실제로 종료된 사건이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협받았다고 느낀 뇌가 아직 전투 모드를 해제하지 못해서입니다. 증상이 계속된다면 전문가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