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랑합니다 - 임실의 윷판형 암각화

임실 윷판 암각화 일부. 오른쪽은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는 단체의 플래카드.
임실 윷판 암각화 일부. 오른쪽은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는 단체의 플래카드.

임실 신평면 면소재지에 천도교 공소(신도들의 작은 모임 장소·포교당)가 보존돼 있는데, 지금은 중국집으로 이용된다는 말을 듣고 찾았다. 내부 서까래도 그대로인 듯 고풍스러웠다. 가는 도중에 발견한 다리 위에 놓인 플래카드 내용이 눈길을 확 끌었다.

‘상가 윷판형 암각화·하가 구석기유적/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위 발대식’

으잉? 우리 임실에 윷판형 암각화는 무엇이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추진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등재를 추진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궁금증을 풀어주고자 친구가 현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신평면 가덕리 뒤편 저수지 옆 너럭바위 윷판형 암각화 30여 점, 선사시대에 새긴 것이라는 안내판을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느티나무 노거수도 장관이었다. 낙엽들을 발로 쓸어내며 살펴본 암각화는 수수께끼투성이였다. 선사시대에 새겼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 당시에도 지금 하듯 윷놀이를 즐겼을까? 같이 간 선배는 세종 임금 때나 새겼다면 말이 되겠다고 했다. 친구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1편 ‘만복사저포기’에 나오는 ‘저포’(윷놀이와 비슷한 전통적인 나무주사위놀이)를 예로 들며 “그럴 수도 있겠다”고 했다.

아무튼, 암각화 하면 첫 번째 떠오르는 게 ‘반구대 암각화’일 터.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유산, 올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7000년에서 3500년 전 절벽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냥과 어로 활동을 주제로 고래 등 다양한 동물과 인물 그리고 도구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선사시대에도 어딘가에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예술인들’이었던 것 같다.

의심이 계속 들었다. 이렇게 새겨놓고 흰옷 입은 민초들이 여기에서 윷놀이를 즐겼을까? 왜 이렇게 똑같은 모양의 윷판화를 많이 그린 걸까? 어느 여름날 남정네들이 천렵을 즐기고 ‘종지윷’을 던지며 “모야” “윷이다” “개” “걸”을 외치며 흥겨워했을까? 승패가 가려지면 추렴하여 두부에 막걸리 한잔도 걸쭉하게 걸쳤으리라.

인근 하가 구석기유적지는 황량한 겨울철 무엇이 무엇인지 짐작도 못 하게 돼 방치돼 있었지만, 이곳에서 구석기 돌도끼, 돌날 등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의미와 가치도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유적지가 임실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지역사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위원회를 발족한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전북에서 화제가 되고, 나아가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전문적 연구와 학술발표 등을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 스산한 초겨울 문화유적 답사길은 은근히 뿌듯했다.

윷판형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면서, 고향 오수 원동산에 현존하는 ‘오수 의견비’를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학계 공인은 아직 안 되었으나, 오수개 이야기는 설화가 아닌 실화로서, 어엿하게 고려 중기(1254년) 최자의 ‘보한집’ 등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가.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호’라는 초라한 명패를 보면 분통이 터지고도 남을 일이다. 2023년 금석문학자 손환일 박사는 탁본에 의해 ‘임술년 3월’이라는 건립연대가 명기된 것을 밝혀냈다. ‘임술년’은 2026년 개최될 학술대회에서 1022년? 아니면 962년으로 공인될 것이 확실한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무이한 의견비로 자리매김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수 의견비’야말로 면, 군, 도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하여 발 벗고 뛰어도 남음이 있으리라. 시급히 서두를(urgent) 매우 중요한(important) 일임이 틀림없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유형문화재로 승격이 돼야 할 것은 불문가지. 그 생각이 달음박질을 치고 있었다.

최영록<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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