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논설위원

매년 말 국회에선 백봉상 시상식이 열린다. 정치의 품격을 유지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한 ‘신사(紳士)’ 의원에게 주는 상이다. 그런데 올해는 백봉상 시상 여부를 놓고 고민을 했다고 한다. 국회에 과연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의원이 있느냐는 근본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란다. 정치권에서 교양과 예의가 실종된 지 오래됐지만, 매년 백봉상 수상자가 나올 만큼은 됐다. 하지만 올해는 적격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국회가, 정치가 격을 잃었다. 그래도 백봉상의 정신을 살리고 장려하기 위해 수상자 선정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백봉상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헌 의원 등 4선 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백봉(白峰) 라용균 선생의 업적과 뜻을 기리는 상이다. 백봉은 생전에 단아한 풍모와 품격 있는 처신으로 영국 신사라는 평을 들었다. 1999년 ‘백봉 신사상’으로 시작해 2018년 ‘백봉상’으로 이름을 바꿨다. 처음에는 정치부 기자들이 평가·추천했으나 현재는 정치부 기자 외에 국회사무처 직원, 국회의원 등도 평가자로 참여한다. 수상자에게는 상장, 상패와 함께 작은 금배지가 수여된다. 국회의원들은 백봉상 수상을 명예롭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백봉상을 받으려고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의원도 상당하다.

백봉상은 대상과 일반상(베스트 10)으로 나눠 시상한다. 대상을 가장 많이 받은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근태 전 의원(이상 4회)이고, 황우여 전 의원(3회), 정세균·김부겸·손학규·조순형·박광온·유승민 전 의원과 주호영 의원(이상 2회) 등의 순이다. 대상을 받은 남자 의원은 대통령이 안 된다는 속설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3년과 2024년 대상이 아니라 일반상을 받았다.

백봉상을 주관하는 백봉정치문화교육연구원 이사장은 라 선생의 넷째 아들인 라종일 전 주영대사가 맡고 있다. 그는 “선친은 ‘합의와 품격의 정치’를 펼친 의회주의자셨다”며 “‘졌다고 비굴해질 필요는 없지만, 권력을 쥐었다고 교만해지면 안 된다’는 게 선친이 평생 하신 말씀”이라고 회상했다. 내년에는 올해와 다르게 백봉상을 줄 의원이 너무 많아 행복한 고민을 하는 해가 되도록 정치가 나아지길 바라는 것은 헛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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