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문화부 차장

연말, 일본에서 가장 화제 중 하나는 ‘올해의 신어·유행어’다. 이즈음 후보가 발표되는데, ‘국보 봤다’가 8위에 올랐다. ‘국보’는 지난 24일 역대 일본 실사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으로,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이 만들었다. 이날 기준으로 누적 관객 수 1231만 명, 매출 173억7740만 엔(약 1640억 원)을 돌파했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텅 비던 극장가를 오랜만에 북적이게 했고, 올해 칸 영화제 초청에 이어 내년 3월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노린다. ‘일본 영화사를 새로 썼다’는 상찬이 이어진다. 그 주인공이 재일 한국인 3세라니, 더욱 흥미롭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국보는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일본에선 최고 경지에 오른 가부키 배우를 일컫는 말로 자주 쓰인다. 영화는 바로 그 예술의 정점, 즉 ‘국보’가 되기 위해 평생 분투한 두 남자의 이야기다. 친구이자 경쟁자인 이들은 서로 많이 다르다. 한 명(기쿠오)은 천부적 재능이 있지만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혈통을 중시하는 가부키계에선 이방인. 다른 한 명(슌스케)은 ‘국보’인 아버지를 뒀다. 그러나 가부키에 대한 열망을 뒷받침할 만한 소질은 없다. 영화는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사람의 삶과 무대를 소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 장대하게 펼쳐내며 묻는다. 예술은 무엇이고, 전통은 무엇이며, 혈통과 재능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쇼트폼 영상의 시대, 우직하게 3시간을 버티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크고 깊다.

이 영화를 봤다는 말이 유행어가 될 만큼 ‘국보’는 지금 일본에서 하나의 ‘현상’이다. 교토와 오사카의 촬영지를 순례하고, 실제 가부키를 보는 관객도 늘었다고 한다. 분석도 넘친다.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은 물론이고, 지극히 일본적인 소재로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다뤄 공감 지점이 넓다, 대중과 오랫동안 멀어졌던 전통 예능이 21세기 ‘새로움’으로 여겨졌다 등 영화 내적인 요인이 자주 언급된다. 또, 가부키의 순혈주의가 일본 특유의 폐쇄성을 마주하게 한다는 성찰적 목소리도 높다. 즉, 불안한 일본 사회에 ‘국보’가 윤리적·정서적 좌표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영화 안팎의 질문과 담론에 더해, 특별히 한국인들에게 ‘국보’는 유례없이 새로운 ‘관람 경험’을 준다. 그것은 일본 사회와 문화, 전통 예술을 이토록 세심하고 적확하게 꿰뚫은 것이 바로 재일 한국인의 눈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자신의 ‘뿌리’가 드러나는 한국 이름을 고집하는 감독이, 일본의 상징과도 같은 전통 예능을 정면으로 다뤘다. ‘일본성’을 보편적 ‘영화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아이러니함이 ‘국보’를 보는 또 다른 묘미다. 이 시대 영화는, 국경은, 또 경계란 무엇인지에 대한 사유를 촉발한다. 그것은 단순히 감독이 경계인이고 내부자이자 외부자라거나 하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크고 깊은 무엇, 즉 우리의 기존 인식과 생각의 차원을 훌쩍 넘어서는 감각이다. 그래서 앞선 질문들은 이렇게 확장돼 돌아온다. 예술과 전통은 누구의 것이며, 혈통과 재능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다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일본 역대 실사 영화 1위 소식을 듣자마자 영화를 또 봤다. 요시자와 료(기쿠오 역)와 요코하마 류세이(슌스케 역)의 명연기에 내내 감탄하며, ‘국보 봤다’가 ‘올해의 유행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상상했다. 다음 달 1일 결정된다고 한다.

박동미 문화부 차장
박동미 문화부 차장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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