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시한폭탄 된 글로벌 국가부채

日·英·佛 채권 발작 살얼음판

日 국채 금리↑ 안전신화 붕괴

 

韓 국채도 이미 물량 부담 커져

포퓰리즘과 재정적자가 문제

위기는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

더불어민주당의 이언주 최고위원은 자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물고 늘어진다. 지난 6월 이 총재가 은행장들에게 “금리 인하 기조 아래 안정적인 가계부채 관리가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대선 직후 경제사령탑이 공석인 상황에서 당연한 부탁이었지만 “대통령실에 조용히 전달하면 될 일인데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몰아세웠다. 나아가 “한은 총재가 교육·입시·정치 사안까지 언급한다”며 “오지랖이 너무 넓다”고 비난했다.

최근 이 총재가 외신 인터뷰에서 “금리 정책의 방향 전환”을 시사했을 때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이 최고위원은 “경솔한 한 마디에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며 “그럴 거면 한은 총재를 그만두라”고 공격했다. 채권 전문가들도 “울고 있는데 뺨 때린 격”이라 아쉬워했다. 하지만 ‘울고 싶다’가 아니라 ‘울고 있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총재 발언은 외국인 채권 투매의 도화선이 됐을 뿐, 이미 국채 시장에는 인화성 물질이 잔뜩 널려 있었다는 뜻이다.

세계 국채 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국가부채가 300조 달러 규모로 급팽창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됐다. 가장 조마조마한 나라는 영국, 프랑스, 일본이다. 영국은 2022년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 45일 만에 물러났다. 대규모 감세안으로 국채 금리가 폭등하고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최저로 곤두박질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재정위기도 현재진행형이다.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99일 만에 물러난 데 이어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도 반년 만에 물러났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 역시 27일 만에 물러났다가 4일 뒤 다시 복귀하는 등 정치적 혼돈으로까지 번졌다.

요즘 살얼음판은 일본이다. 국채 발행 때마다 시장이 발작한다. 오랫동안 일본 국채는 안전자산의 상징이자 최고의 투자처였다. 해외 투자는 1995년(달러당 79엔)과 2008년(달러당 80엔) 두 번에 걸친 엔화 초강세로 기록적 환차손을 입었다. 반면, 국채는 일본 기관투자가들이 안전하게 수익을 확보할 최선의 선택지였다. 1990년 이후 일본은행이 꾸준히 금리를 낮췄기 때문에 국채 가격은 계속 상승했다. 그 결과, 국채의 90%를 일본 금융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50%로 압도적 세계 최고지만, 외환위기가 일어나지 않은 비밀이다.

지금은 분위기가 돌변했다. 엔 약세로 소비자물가가 오르면서 일본도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도 양적완화를 중단하면서 국채 매입 규모를 크게 줄였다. 반면, 일본 정치권의 재정 확대와 감세 기조는 여전하다. 이런 수급 불균형으로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38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순식간에 일본 국채의 안전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중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와 처음으로 역전될 정도다. 내년엔 국채 원리금 상환에만 예산의 25%가 넘는 300조 원을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27일 기준금리를 4차례 연속 동결했다. 환율 불안과 집값 급등, 소비자물가 상승(10월 2.4%)을 고려하면 금리를 올려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이미 국채 시장엔 물량 부담 경고등이 켜졌다. 내년 정부 예산은 역대 최대인 728조 원이고, 적자 국채만 110조 원에 이른다. 국고채 전체 발행 규모도 232조 원으로 올해보다 12% 급증한다. 매년 2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금과 150조 원으로 늘어난 국민성장펀드용 채권 물량 부담까지 더해진다. 이런 채권 시장의 소화불량과 환차손을 우려해 외국인들은 이달 한 때 10년 만기 국채를 2조7000억 원 넘게 순매도하기도 했다.

재정의 둑은 일단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한번 방향이 어긋나면 사실상 복원하기 어려워 국가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보수 정권은 감세로, 진보 정권은 재정 확대로, 나라 곳간을 번갈아 갉아먹고 있다. 언제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돼 국채 시장에 급격한 가격 조정이 일어날지 모른다. 위기가 시작되면 상상보다 훨씬 빠르고 잔인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한국은 1998년 외환위기 때 체험했다. 민주당은 애꿎은 한은 총재의 입을 향해 오발탄을 날릴 게 아니다. 채권 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인 민주당발(發) 과도한 포퓰리즘과 재정 적자를 줄이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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