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화사 ‘Good Goodbye’
노래는 움직이는 시(詩)라서 노래마을에 시들이 출몰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바람처럼 나타나 멜로디를 흔들어놓는다. 어떤 바람은 산들바람, 어떤 바람은 싹쓸바람.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서정주가 쓴 ‘자화상’의 일부인데 이 시는 그의 첫 번째 시집인 화사집(1941)에 실렸다. 거기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 나오는데 그 시의 제목이 화사(花蛇)다.
지금 화사집을 검색하면 시집이 아니라 가수 화사(1995년생)의 집이 먼저 등장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가볍게 밀어낸 셈이다. 하기야 읽지 않는 시집은 죽은 자의 집에 불과하다. 아직 서른 살(이미 서른 살)인 이 가수가 지난주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화제가 없으면 존재도 없다는 대중문화 풍향계에서 화사는 어떻게 존재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렸을까.
시상식 축하 무대는 ‘구색 맞추기’ 성격이 짙다. 한 곡 부른 후 박수받고 퇴장하는 일종의 연결고리다. 영리한 화사에겐 야심이 있었고 계획이 있었다. 디데이는 11월 19일. 주어진 시간은 채 4분이 안 된다. 그런데 이 4분이 보통 4분이 아니다. 상 받는 배우(5분의 1)보다 상처받는 배우들(5분의 4)이 훨씬 더 많은 이곳에서 내가 한번 저질러(불 질러) 볼 테야. 별들의 잔치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이 되고 말 거야. 그 화려한 배우들을 ‘어쩔 수가 없도록’ 일순간 포로로 만들어버릴 거야. 그들을 홀리고 현장에 없는 팬들까지 사로잡을 거야.
제46회 청룡영화상 공식시청률은 3.4%. 요즘 같아선 많다 적다 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3.4는 우직한 본방사수파의 숫자일 뿐이다. 입소문이 나면 3.4가 3억4000 되는 건 시간문제다. 시청률이 부채나 선풍기라면 조회 수는 에어컨 그 이상이다. 바람의 급수와 에너지효율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이번 ‘사태’에 대해 팬들은 이런 표현을 쓴다. ‘화사가 화사했다’ 화사가 화려하고 곱다는 뜻보다는 화사가 진짜 이름값 했다는 의미다. 도대체 화사는 어떤 가수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자신감 있는 여자 말하자면 느낌 있는 여자’ ‘이상해 좀 특이해 평범한 게 더 싫어’ 4인조 걸그룹 마마무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가사인데 화사는 팀으로 무대에 설 때 ‘마마무에서 보컬과 랩을 맡고 있는 화사한 화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성경에는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있는데 훌륭한 무대는 협력하여 미를 이룬다. 그날 무대를 완성한 1등 공신은 배우 박정민이다. 노래가 시작되고 2분 40초 후에 어떤 남자가 객석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온다. 등 뒤엔 무기(?) 같은 걸 숨겼다. 사전 약속이 없었다면 분명 방송사고다. 헤어진 연인이 복수하려고 난입한 모양새 바로 그거다. 밝혀진 무기의 정체는 클레오파트라의 피같이 빨간 하이힐. 화사는 받자마자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러나 둘은 격투기 대신 입을 맞춘다. ‘굿 굿바이’ 무대를 빠져나가는 화사에게 남자가 소리친다. “구두 가져가”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뻔한 시상식을 철학적(?) 뮤지컬로 승화시킨 이른바 청룡영화제 점령사건의 전말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최승자 시 ‘30세’) 연예계엔 두 개의 상반된 경구가 이어져 내려온다. ‘튀어야 산다’ vs ‘튀면 죽는다’ 화사의 선택은 분명하다. 보컬로 참여한 하이포투엔티(알렉스, 임영준)의 노래 ‘Hook가’에는 화사의 본명(안혜진)이 신탁처럼 등장한다. ‘꿈을 크게 꿔라 혜진아. 깨져도 그 조각이 크다’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산다. 네 탓 내 탓 구질구질한 이별은 이제 굿바이. 화사의 노래(‘Good Goodbye’)처럼 ‘눈물은 고이고 찬란하게 빛나 우린 좋은 안녕’을 연습하자.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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