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생각하고 싶지 않은 12·3 기억
안보 위한 계엄을 정치에 악용
1년 지났지만 국힘은 변화 없어
민주당 탓만 하면 역이용 당해
국힘은 尹과 단호히 절연해야
계엄 망령 못 떨치면 결과 뻔해
과거를 지울 수 있다면 2024년 12월 3일 밤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하루의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 시점에 한 통의 SNS가 날아왔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중요 발표를 할 조짐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 야당이 줄탄핵, 예산안 삭감 등을 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이나 야당에 호소하는 강한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국회의원들은 4일 최재해 감사원장과 검사들에 대한 탄핵 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국회 주변에서 저녁과 술자리를 하며 모여 있었을 때였다.
황급히 한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확인해 보니 다음 주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기로 잠정 합의를 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밤 10시 23분 얼굴이 상기된 윤 대통령은 마이크 앞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수석 최고위원이 몇 달 전 비상계엄 운운했을 때 아무리 정치 공세이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논평을 했던지라 믿을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대학 1학년 때 선배가 몰래 보여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이 떠올라 온몸이 떨렸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계엄에 협조했던 이들은 구속돼 있고, 이를 막지 못한 한덕수 전 총리는 징역 15년을 구형받았다. 윤 전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김건희 씨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오는 3일 특검의 구형을 기다리고 있다. 계엄이 터지자 가장 먼저 “위헌 위법하다”는 메시지를 내고 국회로 달려가 18명의 의원과 함께 계엄 해제에 앞장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당에서 쫓겨나 배신자 소리를 듣고 있다. 계엄해제에 참여했지만, 탄핵 국면에서 급변신해 ‘아스팔트’ 세력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가 된 장동혁 의원은 3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우리 헌법에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제77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윤 전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서 결정문에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판시했다.
계엄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안보의 영역이라는 것이 헌법과 헌재 결정문을 통해 확인됐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윤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에 대해 “체포를 지시한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한동훈 대표가 반국가세력이냐”고 되물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정치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군을 동원해 해결하려 한 것이 근본적 죄책이다. 아무리 ‘계몽령’ 운운해 봐야 믿을 국민은 극소수다.
그런데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대구 집회에서 “민주당의 의회 폭거와 국정 방해가 계엄을 불렀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께 혼란과 고통을 드렸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를 사과라고 한다. 이런 논리라면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계엄을 선포해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사법부를 내란 동조 세력으로 프레임을 짜고 허위 사실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한다는 논리를 세운다면 장 대표의 말처럼 계엄을 못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SNS에 “왕이 되고 싶어 감히 어좌에 올라앉았던 천박한 김건희와 그 김건희 보호하느라 국민도 정권도 안중에 없었던 한 남편의 처참한 계엄 역사와 우리는 결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많은 국민이 공감할 내용이다. 그런데 장동혁 체제의 국민의힘은 스스로 계엄의 바다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여전히 국민의힘을 떠나지 않고 있는 계엄 망령과 결별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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