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중도 확장과 ‘장동혁 구상’

 

張, 현시점 12·3 ‘계엄 사과’ 없을 듯… 지지층 마음 얻고 → 외연 넓히기 수순 구상

중도란 결정을 유보한 ‘이중개념주의자’… 안정감과 비전 제시하면 확장 기회 생겨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동 1년(12월 3일)을 맞아 메시지를 고민 중이다. 당 일각에서는 ‘중도 확장’을 위한 ‘계엄 사과’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시점에서 장 대표의 계엄 사과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도란 뭘까. 장 대표의 미래 구상은 무엇일까.

◇중도의 실체

장 대표의 소신은 ‘굳히고 뻗기’다. 외연 확장보다 더 시급한 게 보수 지지층 결집이라고 생각한다. 달리 표현하면 ‘계엄과 탄핵으로 찢어진 지지층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논리다(박준태 국민의힘 대표 비서실장).

한국의 정치에서 이념을 베이스로 하는 중도는 매우 드물다. 모든 이념적 이슈에서 중간지점을 취하거나, 정책 스펙트럼상 일관된 중간적 입장을 갖는 유권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경제는 보수, 복지는 진보’처럼 이슈별로 의견이 조각나 있다. 중도는 이념의 중간(middle)이 아니라 이념의 부재(absence)에 가깝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도로 분류된 사람들의 특징은 정치 뉴스 소비량이 적고 정당 일체감이 낮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런 부류를 ‘이중개념주의자(bi-conceptualist)’로 규정한다. “순수한 진보주의자나 순수한 보수주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이중개념주의자이다. 어떤 이슈에서는 보수적 프레임을, 또 어떤 이슈에서는 진보적 프레임을 사용한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이중개념주의자들은 겉으로는 중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중도란 독립된 이념이 아니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서로 다른 프레임이 활성화된 결과일 뿐이다.”(‘The Political Mind’)

중도가 실체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공간적 착시’ 때문이다. 정치 흐름을 하나의 선(line)으로 상정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중간’이라는 공간이 생긴다. 하지만 실제 유권자들의 분포는 선이 아닌 클러스터에 가깝다.

요컨대 여론조사에서 “나는 중도다”라고 답하는 것은 대부분 정치적 미결정자(undecided)의 자기방어적 응답이다. ‘잘 모르겠다’라는 것을 품위 있게 말한 버전일 수도 있다. 중도는 ‘결정이 유예된 좌우’다.

◇‘계엄 사과’와 중도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면, 장 대표가 ‘계엄 사과’ 메시지를 내면 중도가 지지해줄까. 이 질문은 현재 여야의 갈등 구도, 국민의힘 내부 권력투쟁 양상, 그리고 정치적 결정을 유보한 중도의 특성을 면밀히 종합 분석해야 답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적어도 아직은’ 계엄 사과로 외연 확장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여긴다. 실제로 지지층 결속이 약한 상태에서의 사과는 ①자칫 지지층에 상처가 돼 정서적 균열을 부르고 ②반대 정치세력엔 ‘내란 자백’ 혹은 ‘진정성 부족’ 비난의 빌미를 제공하며 ③중도에는 ‘불안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다. 고도의 정치행위엔 특히 타이밍이 필요한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계엄 사과는 ‘마이너스-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소장파나 친한(친한동훈)계가 중도 확장을 내세워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당내 권력투쟁을 통한 정치적 공간의 점유 필요성 때문이다. 친한계는 당내 윤석열 흔적을 지워야 ‘한동훈 브랜드’로 독립이 가능하고, 소장파는 내부 개혁 메시지를 주도함으로써 세력 교체를 도모할 수 있으며, 비당권파는 당대표의 메시지 패권을 흔들어야 당권 쟁취의 시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다.

장 대표가 1년 전 국민을 놀라게 한 계엄 사과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달 28일 대구 집회에서 “계엄으로 혼란과 고통을 드려 책임을 통감한다”고 머리를 숙였었다. 앞서 1년 전엔 국회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한 표를 행사했다. 다만 고도의 정치행위에는 더 큰 명분과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장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섣부른 계엄 사과는 여권의 내란몰이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며 “이는 이른바 중도는 물론 전통적인 지지층에도 좋은 신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중진 A 의원도 “계엄 사과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내란몰이의 빌미로 이용되지 않도록 유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프레임 전략

한국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를 갖춘 사실상의 양당 구조에서 중도는 더욱 허상일 수밖에 없다. 내각제나 다당제에서는 중간지대가 오히려 제도화하지만, 대통령제는 기본적으로 양분된 정치 공간을 만든다. 대통령제의 특성상 정치 공간이 둘로 나눠지기 때문에, 중도는 실체가 아니라 결정을 유예한 부유(浮遊)층으로 존재할 뿐이다.

중도 확장은 지지층의 결집 후 비로소 시작돼야 한다. 장 대표가 얘기하는 ‘굳히고 뻗기’다. 한국의 중도는 정치적 위험도, 감정적 안정감, 혼란에 따른 피로도에 민감하다. 즉 중도는 위험도가 낮아 보이는 쪽으로 움직인다. 이들이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는 시기는 대부분은 선거일을 한두 달 남겨둔 때이다.

이른바 중도 확장을 위한 프레임 전략은 명확해졌다. 국민의힘이 현재 처한 조건에서 해야 할 첫째 과제는 지지층의 마음을 얻고(굳히고) 외연 넓히기(뻗기)에 나서는 것이다. 뻗기의 시기는 연말 연초 무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진보세력에 빼앗긴 ‘프레임 주도권’을 회복해야 한다. 레이코프·잴러·킨더·컨버스의 ‘프레임 우위 선점’ 전략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오늘날 중도가 가장 많은 연령층인 2030 유권자들을 겨냥해야 한다. 이들은 이념보다는 유능감·삶의 기회·정책 체감성 등에 민감하다. 진영논리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신뢰도가 최선의 결정 요인이다. 따라서 보수의 전략은 이들로 하여금 “보수가 집권하면 내 삶이 나아질 것 같다” “일은 보수가 더 잘할 것”이라는 인식의 틀을 갖추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이념의 재포장보다 훨씬 강력하다.

셋째, ‘안보-경제-공정’의 3축을 메시지 구성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불안정한 시대를 안전하게 운영할 정치세력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국가 경쟁력을 더 잘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리스크 최소화 정당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전략적 오류

중도를 실체적 ‘집단’으로 취급하는 순간, 전략적 오류에 빠진다. 미결정자들의 결정을 돕는 게 중도 확장이자 외연 확장이다. 보수를 지지하면 리스크가 아니라 비전이 생길 것이라고 느끼게 만들어주면 결정은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중도’에서 이념적 온건층(moderate)의 포션은 극히 적음. 주로 정치적 무당층(independent)과 투표 부동층(undecided)이 중도를 구성. 이 중 선거 막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류는 부동층.

‘프레임’은 틀·구조·뼈대라는 의미지만, 여기서는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뜻함.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프레임 이론’을 처음 정립했으며, 정치 영역에서 주로 쓰임.

■ 세줄 요약

중도의 실체: 중도는 이념의 중간(middle)이 아니라 이념의 부재(absence)에 가까워. 레이코프는 중도를 ‘이중개념주의자’로 규정. “나는 중도”라고 답하는 것은 대부분 정치적 미결정자(undecided)의 자기방어적 응답.

‘계엄 사과’와 중도: 장동혁 대표는 ‘적어도 아직은’ 계엄 사과로 외연(중도) 확장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여김. 계엄 사과 필요성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지만, 섣부른 사과는 여권의 내란몰이 명분을 제공할 것이란 판단.

프레임 전략: 중도 확장은 코어 지지층의 마음을 얻은 후 시작하는 것. 이것이 장 대표의 ‘굳히고 뻗기’임. 이어 진보세력에 빼앗긴 ‘프레임 주도권’을 회복하고, ‘안보-경제-공정’ 3축을 메시지 구성의 핵심으로 삼아야.

허민 전임기자
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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