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공무원 복종 의무 논란 코미디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는 현실
위법지시 우려 복지부동 냉소
헌법존중TF의 모순적인 공포
누구라도 언제든 겨눌 칼자루
적폐 청산 부메랑과 정치 퇴보
최근 ‘공무원 복종 의무 삭제’를 둘러싼 논쟁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이다. 76년 만에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한다’는 전근대적 문구를 지우는 것이 논쟁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 멀리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이번 논란은 정치가 법 위에 군림하는 우리 사회의 비극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국가공무원법의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표현을 삭제하고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되 위법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거부할 수 있다’로 바꾼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국방부도 군인복무기본법의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한다’를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고, 명령이 명백히 위법하면 거부할 수 있다’로 고치자는 의견을 냈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고려하면 오히려 뒤늦은 결정으로 축적된 법원 판례를 뒤따라가는 정리 작업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 수십 년간 대법원은 공무원과 군인에게 명백히 위법한 상관의 명령에는 따를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려왔다.
하지만 즉시 ‘위법의 기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공무원이 명령을 따르지 않아 기강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 의문과 우려에는 두 전제가 깔려 있다. ‘위’에서 언제든 위법한 지시가 내려올 것이라는 불신과‘아래’에서 복지부동할 것이라는 냉소다. 이들을 작동시키는 화력은 ‘법보다 권력이 더 위력적’인 현실이다.
‘위법’이란 헌법이나 법률·명령·규칙 등에 어긋나는 모든 상태를, ‘명백한 위법’이란 상식과 기본적인 법 감각을 가진 사람이 보기에 위법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다는 것은 한국에서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통의 상식이 깨졌음을 뜻한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명백한 위법’과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권력에 따라 최종 판단이 뒤집히기 때문이다.
물론 ‘위법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 ‘정당한 명령’이라는 조항의 빈 곳, 즉 자의적 판단이 가능한 부분이 있지만, 이 부분이 우려를 넘어 공포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 비춰보면 우리 현실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연방 공무원 윤리 체계는 기본적으로 ‘상관의 정책과 명령은 합법’이라는 전제를 깔고 중대한 불법·부패·안전 위험이 발생할 경우 휘슬블로어(whistleblower) 보호법이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미군은 더더욱 모든 명령은 합법으로 추정하고 전쟁범죄나 쿠데타성 명령처럼 ‘명백히 불법’인 경우에 거부 의무를 강조한다. ‘합법이 정상, 위법은 예외’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그 반대다. ‘위법이 만연, 정당한 거부는 예외’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다. 12·3 비상계엄 가담자를 가려내기 위해 49개 기관, 75만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TF는 한국 공조직을 위법이 만연한 곳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 죄악시한다. 계엄은 대통령, 군 수뇌부, 핵심 참모진 등 제한된 의사결정 라인에서 비공개로 이뤄져 일반 공무원들이 적극 가담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고려하면 ‘정권 줄 세우기’와 ‘정치성 걸러내기’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는 ‘투서’ ‘내부 이간질’은 물론 공공 부문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고착화하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헌법존중 TF’가 ‘공무원 복종 의무 삭제’ 논쟁의 가장 위험한 예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TF는 이들 규정이 ‘위법에서 한국 사회를 지켜줄 방패’인 동시에 ‘모두에게 언제라도 겨눌 칼자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형사범죄, 헌법·선거법·인권 규정 위반, 허위 공문서 작성·조작, 예산·입찰 비리, 권력형 비위 등 ‘명백한 위법’의 유형을 법률·시행령·지침에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공무원의 이의 제기 절차와 보호 장치도 구체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하지만 권력이 법 앞에 서면 이 모든 조항은 의미가 없다. ‘권력의 정치 판단’이 아니라 ‘법에 의한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으로 기록될 12·3 계엄은 철저히 책임을 따져 죄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앞세워 한국 정치를 다시 뒤로 끌고 가 퇴보시키는 악순환만은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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