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쥐’

 

재치·유머 가득한 풍자 오페레타

연말 빈의 흥청망청 분위기 살려

증시 대폭락후 불황·충격속 작곡

시대마다 각양각색 재탄생 ‘인기’

아내를 못 알아보고 유혹하는 남자. 도대체 말이 되는가. 놀랍게도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의 오페레타 ‘박쥐’를 요약하면 이렇다. 한 사내가 친구의 장난에 휩쓸려 무도회에 숨어들고, 변장한 자기 아내에게 부인인지도 모르고 구애한다. 남성은 단단히 골탕을 먹고, 그녀는 남편이 얼마나 난봉꾼인지 확인한다. 이 모든 소동은 “샴페인 때문이죠” 한마디에 극적으로 봉합되고 화해된다. 재치와 유머가 가득한 풍자극이다.

음반을 들으며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어 본다. 아버지는 오페라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하셨는데, 그중 단연코 많이 재생된 것이 ‘박쥐’였다. 우리 가족은 둘러앉아 이 오페레타를 키득거리며 보곤 했다. 하도 돌려서 너덜너덜해진 테이프는 이따금 유튜브 0.75배속처럼 늘어진 소리를 냈다. 실없고 때론 불온한 내용이지만 유쾌함만은 무엇도 따라올 수 없었다.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연말 오스트리아 빈의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잘 살린 것도 매혹적이었다. 속고 속이는 요절복통 상황, 호화로운 무도회, 고주망태가 된 인물들. 만담에 가까운 술꾼의 주정. 이를 보시던 아버지의 나지막한 웃음. 모두가 수십 년이 지나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샴페인 기포처럼 가볍게 들뜬 한바탕 난장. ‘현재를 즐겨라’ 주제가 이렇게 명쾌히 드러나는 작품이 있을까.

올해의 ‘박쥐’ 감상은 더욱 남다른 의미를 발할 터다. 2025년은 슈트라우스 탄생 200주년이기 때문이다. 빈은 페스티벌을 위해 전담 기구를 설립했고, 행사는 69개 장소에서 열리고 있다. 일 년 내내 그의 이름이 걸린 축제가 이어진 셈인데, 포괄 분야도 다양해 음악, 무용, 문학, 연극, 전시, 디지털 미디어를 망라한다. 그의 생일 10월 25일을 기점으로 열기는 정점을 찍었고, 이는 연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빈의 카페에서는 그의 왈츠가 흘러나오고, 관광객들은 시립 공원에 자리한 슈트라우스 황금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이런 활력은 빈만의 풍경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는 슈트라우스 출생 200주년 콘서트로 ‘박쥐’ ‘집시 남작’ ‘베네치아의 하룻밤’ 같은 그의 오페레타를 선보였다. 일본에서는 올해 16회차를 맞은 ‘빈 무도회 인 도쿄’에서 작곡가의 탄생을 기념하는 특별 회차가 마련됐다. 요한 슈트라우스 시대와 언어는 다르지만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왈츠에 몸을 맡기던 빈의 정취를 잠시나마 공유하는 순간이다.

‘박쥐’는 쾌활한 웃음과 환락을 품고 있지만 창작 배경은 정반대였다. 1873년 봄, 빈 증권거래소의 대폭락 사태 이후 빈 사회는 깊은 불황에 빠졌다. 슈트라우스는 이런 상황 속에서 작곡 의지를 불태웠고, 이듬해 작품을 빠르게 완성했다. ‘박쥐’는 “우울한 현실을 잊게 하는 달콤한 해독제”라는 평가를 얻었고 침체한 도시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춤’은 핵심 요소였다. ‘박쥐’에는 왈츠 외에도 폴카 등 흥겨운 춤곡들이 등장한다. 2막에서 아내 로잘린데가 부르는 아리아엔 헝가리풍 무곡 차르다시 스타일을 가미했다. 차르다시 자체가 선술집을 뜻하는 헝가리어 차르다(csarda)에서 유래했으니 주막과 무도회장이 술이라는 공통분모로 이어진 셈이다. ‘샴페인의 노래’에서는 합창, 무도곡, 극음악 요소를 능숙하게 혼합했다. 슈트라우스는 ‘왈츠의 왕’이지만 그의 춤곡에 대한 재능은 왈츠로만 한정되지 않았다.

대본과 줄거리 각색도 흥미롭다. 원작은 프랑스 희극으로, 크리스마스 및 새해맞이 만찬에서 벌어지는 외도와 농담을 퇴폐적으로 그렸다. 이는 보수적인 빈 청중에게 맞춰 “아내를 모르고 유혹하는 남편”이라는 발랄한 코미디로 탈바꿈했다. 외설적인 이야기가 부부간의 악의 없는 속임수와 한밤의 덧없는 촌극으로 거듭난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박쥐’가 시대마다 각양각색으로 재탄생된다는 사실이다. 평론가들은 ‘박쥐’의 인기 비결이 “음악적 완성도 위에 어느 연출이든 고유 색채를 입힐 수 있는 여백”이라 본다. 때론 원작 그대로 우아한 사교계를 재현하지만, 어떤 무대는 현대 도시의 네온 불빛 아래 클럽 무대처럼 연출된다.

그래서일까. 연말의 ‘박쥐’는 유독 마음에 다가온다. 경쾌한 춤과 노래 속 낙천적인 생의 찬미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슈트라우스가 150년 전 한겨울 빈의 우울을 달래기 위해 써 내려간 선율은 우리 마음에도 술잔 속 거품처럼 풍성하게 차오른다. 삶이 복잡하고 버거울 때 ‘박쥐’는 살며시 말을 건넨다. “지금은 그냥 즐겨도 괜찮아요.”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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