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미국이 본격적인 원전 확대에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승부를 걸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관세 협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확보하는 7500억 달러의 투자금(현금)으로 우선 원전부터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과의 ‘팩트시트’에도 이미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등에 최대 332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명시했다.
원전 확대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지난 5월에 적어도 750억 달러를 투자해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 건설을 시작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2050년까지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의 4배로 늘리는 장기 전략도 세웠다. AI용 데이터센터의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려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안정적인 고품질 전력 생산이 가능한 원전이 꼭 필요하다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미국의 원전 확대 방침은 우리에게도 매력적이다. 대형 원전의 설계·시공·운영 전 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우리 업계도 미국의 원전 확대로 상당한 이익을 기대한다. 세계 최초로 스마트 원자로의 실시설계 승인을 받은 우리의 경험을 미국이 앞서가는 SMR 개발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물론 원자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때 이재명 대통령이 느닷없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들고나왔다. “핵연료를 공급해 달라”는 이 대통령의 공개적 요구에 트럼프 대통령은 ‘원잠(SSN)을 미국에서 건조하게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튀르키예 순방 때 흑해 연안의 시노프에 건설 예정인 대형 원전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국내에서의 원자력 활용에 관한 입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원잠은 용납할 수 있지만, 상업용 원전은 곤란하다고 한다. 원전을 건설할 부지도 없고, 건설 기간도 15년이나 걸리며, 무엇보다도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확실한 개인적 인식이다. 원전과 에너지 관련 업무를 떠맡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입장도 묘하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분명하게 명시된 신규 원전과 SMR의 건설은 “공론화를 통해서 결정할 일”이라는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런데 ‘AI 3대 강국’을 위해 100조 원을 투자하면서 2050탄소중립도 기어이 달성하고 말겠다고 우기는 우리의 전력 사정도 만만찮다. 연평균 하루 4시간 가동하는 태양광이나, 하루 5시간 가동하는 풍력으로는 AI가 요구하는 고품질의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 기업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비용이 필요하고, 화재 위험도 극복하지 못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태양광·풍력의 간헐성·변동성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원전과 석탄을 포기한 ‘에너지 대전환’은 비현실적인 환상일 수밖에 없다. 육지와 바다를 ‘중국산’ 태양광·풍력 설비로 뒤덮어야 할 이유가 없다. 진정한 무탄소 전원인 원전은 위험하고, 가장 경제적인 석탄은 더러워서 포기하겠다는 패배주의는 극복해야 한다.
햇빛과 바람이 아무리 깨끗해도 너무 비싸고 불안정하면 그림의 떡이 된다.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멀쩡한 원전·석탄화력을 뜯어 없애면서 외치는 탄소중립과 친환경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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