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책
그늘 안에서
아드리앵 파를랑주 글·그림│신유진 옮김│보림
그림책의 고전이자 명작으로 이야기되는 작품 중 ‘장갑’이란 책이 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 에우게니 M 라초프가 우크라이나 민담에 그림을 그려 1951년 출간한 책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숲 속에 할아버지가 떨어뜨리고 간 장갑 한 짝이 놓여있다. 몹시 추웠을(러시아의 추위라니! 라초프는 1906년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출생했다) 동물들이 하나둘 장갑을 찾아 모여든다. 몸집이 가장 작은 생쥐부터 시작해 토끼, 여우, 멧돼지, 곰까지. 장갑 속은 이들로 꽉 차지만 비좁아지지 않는다. 먹고 먹히는 관계도 작용하지 않는다. 눈보라 치는 숲 속에서 장갑은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환대의 공간이다.
그림책 ‘그늘 안에서’를 보면 자연스레 장갑이 떠오른다. 장갑에서 숲 속 동물들이 눈보라를 피해 장갑 속으로 들어가듯 이 책에서는 어린이와 동물들이 햇빛을 피해 자그만 바위 뒤 그늘로 모여든다. 민담의 반복되는 서사 구조처럼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한 동물씩 등장하고 바위 그늘 안에 있던 동물들은 자세와 위치를 매번 조정해 가며 새로 등장한 동물을 그늘로 들어오게 한다.
이렇듯 서사 구조는 비슷하지만 그늘 안에서의 세계는 장갑이 보여준 안온한 환상의 세계는 아니다. “그날은 새벽부터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란 첫 문장, 네온 컬러로 표현된 작열하는 태양과 보색 대비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긴장감에서 기후 위기를 읽어내도 무방하다. 한정된 그늘에서 어떻게든 동물들의 자리를 만들려고 애크러배틱처럼 힘겨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어린이와, 서로의 몸을 퍼즐 조각 맞추듯 어렵사리 구획하는 동물들을 보면 기후 위기 시대에 이들의 절박한 생존이 감각된다. 장갑의 환대가 그늘 안에서처럼 연대로 변화한 시차를 확인하며 현재와 미래의 어린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김유진 아동문학평론가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1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