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국어사전은 ‘우위를 차지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게 될 확률이 높은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마태복음 제25장 29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를 근거로 만들었다. 마태효과를 바탕으로 ‘나쁜 사회’ 같은 책이 나오기도 했다.
마태복음 말씀은 달란트 비유 끝에 나온 것이다. 주인이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배로 불렸으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묻어놨다가 그대로 갖고 왔다. 그러자 주인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겼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것”이라고 야단치며 그 한 달란트를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준다.
성경의 의미와 다르다곤 하나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변되는 마태효과를 실감하는 일들을 종종 생긴다. 오래전 대형 출판사에서 유명 작가의 소설이 출간된 날, 나는 그 회사 임프린트 브랜드에서 책을 펴냈다. 유명 작가의 책 표지가 시내버스 옆구리에 대문짝만하게 찍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내 소설은 지면 광고의 한 귀퉁이에 한두 번 실린 게 고작이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김점선 화백이 내 책을 홍보해 주겠다더니 임프린트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버스에 광고하는 선생이 유명하냐, 이근미가 유명하냐”라고 물었다. 어이없는 질문에 대표가 미소만 짓자 김 화백이 “안 알려진 사람을 홍보해야지, 왜 다 아는 사람을 광고해”라고 하셨다.
세상 이치가 그런 것이다. 팔릴 만한 책이 나오면 출판사는 홍보비를 잔뜩 책정한다. 대형 서점들도 유명 작가가 책을 내면 알아서 매대를 설치하고 잘 보이는 곳에 유인물을 붙인다. 억울할 일도 아니다. 그 작가도 처음부터 그런 호사를 누린 건 아니니까. 우리 가요 ‘회전의자’의 ‘아아아,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 하는 가사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메인 작가로 일할 때 부익부 빈익빈 상황을 목격한 일이 있다. 광고가 툭툭 떨어지면서 라디오 존폐가 거론되는 지경까지 갔다. 급기야 “각 프로그램마다 작가를 반으로 줄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고료가 높은 메인 작가들만 살아남았다. 프로그램 전체를 장악하는 메인 작가를 방출할 수 없으니 소소한 코너를 맡은 작가들이 희생된 것이다. 때마침 시사 프로그램에 영입되어 IMF를 춥지 않게 보냈으니 나도 마태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인가. 다행히 나갔던 작가들이 오래지 않아 돌아와 실력 쌓을 기회를 가졌다.
인생 2막을 맞아 일자리 찾기에 나선 사람이 많다고 한다. 좋은 직장의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퇴직 이후 요소요소에 쏙쏙 들어가는 걸 볼 때면 마태효과가 절로 떠오른다. 전관예우가 먹히는 자리면 그야말로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현직에서 충분히 누렸으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도 될 텐데, 꼭 그렇게 다 찾아 먹어야 하나, 그런 생각은 부질없는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 써먹을 만한 사람을 큰돈 주고 모셔가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린단 말인가.
인생 2막의 최강자는 따로 있다. 정년퇴직한 이후 영전해서 간다 해도 몇 년이면 다 그만두는데, 전문직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분들 가운데 지식을 대방출하며 승승장구하는 노익장이 얼마든지 있다.
얼마 전, 팔십 대 중반의 나이에 현역처럼 달리며 언론에도 종종 등장하는 분께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석에서 뵈었을 때는 연락하라며 명함까지 주시더니, 대뜸 “내 맘대로 못 해. 요즘 내 일을 봐주는 분이 생겼어”라고 했다. 인터뷰 사례비를 받으면 가능하다는 그분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사례비를 지급하지 않는 종이 매체의 관행과 사정을 말씀드렸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 오래전 내가 시사잡지에 기고한 ‘배우 배용준 인터뷰 기사’를 일본 매체가 고료를 지불하고 재수록하자 일본 매체 여러 곳에서 나를 인터뷰했다. 통신원이 직접 찾아와 녹음한 내 목소리가 라디오에 나가기까지 했으나 내가 받은 건 과자 한 봉지밖에 없다.
그분께 종이 매체의 어려운 사정까지 말씀드렸지만, “나도 지금까지 그냥 다 해줬다. 그런데 매니저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더라”며 계속 매니저 핑계를 댔다. 매니저라는 분께 연락했더니 “얼마나 대단한 분인데, 돈 안 받고 절대 못 해준다”며 딱 잘랐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고액을 받았다고 줄줄 늘어놓더니 방송사도 돈 안 주는 데는 다 거절했다고 큰소리쳤다.
결국 인터뷰는 하지 못했다.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며 사례를 요구하는 건 당당하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뭔가 씁쓸했다. 80세가 넘은 지금도 고액 강연료를 받을 정도면 좀 베풀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회가 없어서 일을 못 한 사람도 많고, 불운한 일로 중도 하차해서 다시 일어서지 못한 사람도 많은데, 충분히 누린 분이 “돈돈돈”을 외치며 꽉꽉꽉 짜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그 연세에도 큰소리치며 부익부 빈익빈을 만끽하시는 그분의 기개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더라도 정년까지 잘 누렸으면, 그 후에는 그간 쌓인 노하우를 사회와 좀 나누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남의 말 할 것 없이 나부터 실천하면 될 일이다. 버스 옆구리 광고도 못 해 본 나를 80세 넘어서 부를 리 없을 테니 괜한 각오이긴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