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1980년대 학생운동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호칭 교육을 받는다. 남녀를 불문하고 선배들에겐 무조건 ‘형(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학생이 남자 선배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자본주의 잔재 운운하며 금기시했다. 동기들끼리도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공산·사회주의에서 ‘동지(comrade)’라는 표현을 쓰듯이 운동권 사회에서 평등과 연대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용어를 썼다. ‘스탈린 동지’ ‘마오쩌둥 동지’ ‘김정은 동지’ 등 직책을 붙이지 않고 동지라고 불렀다.
1970∼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 사회에 나오고 관직에 등용되면서 ‘형’ ‘누나’는 그들만의 동지 의식을 표현하는 용어로 쓰였다. 노무현·문재인 정권 시절 운동권 선후배 사이에서 ‘총리님’ ‘장관님’ ‘위원장님’ 등의 직함 호칭 대신 이들은 ‘형’으로 통했다. 관료들이 장관에게 “장관님”이라고 깍듯하게 호칭하는데 운동권 선후배는 형이라고 하면 위화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도 여당 국회의원 중 운동권 출신들은 김민석 총리나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 등 운동권 선배에게 “김 총리” “우 수석” 대신 “민석이 형” “상호 형”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진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과 나눈 문자가 언론 카메라에 포착돼 파문이 일었다. 한두 번도 아닌데, 또 인사 청탁을 하는 문자가 포착된 것이다. 문 수석부대표가 김 비서관에게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에 지인을 추천했는데 김 비서관이 “제가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했다. 김 비서관이 강훈식 비서실장과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형·누나라고 호칭한 것이 눈길을 끈다.
강 실장은 김 비서관의 직속상관인데 “훈식이 형”이라고 하고, 대통령실 실세로 알려진 김 부속실장은 “현지 누나”라며 친근감 있게 표현한 것이다. 강 실장이야 대통령실 인사위원장이지만 김 부속실장은 여전히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김 비서관은 4일 사직했는데, ‘현지 누나’를 위한 꼬리 자르기 논란을 초래했다. 또, ‘만사현통’이 인증된 셈이다. 이런 식의 형·누나 문화는 공직사회를 사적 모임으로 변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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