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민해경 ‘내 인생은 나의 것’

이정현의 ‘와’는 비주얼이 워낙 강렬해서 자료화면이 등장할 때마다 눈길을 끈다. 단도직입(단칼로 직진해 들어감) 무녀(巫女 혹은 舞女)가 칼 대신 부채로 (이별을 저지른 자를) 추궁한다. 첫마디가 이렇다. ‘사실이 아니길 믿고 싶었어’ 1999년에 나왔으니까 20세기 마지막 히트곡이라 보아도 무방할 터다. 노래는 절정을 향해 치닫다가 차마 믿고 싶지 않은 그 사실(죄목)을 반복적으로 토해낸다. ‘설마 했던 네가 나를 떠나버렸어. 설마 했던 네가 나를 버렸어’ 호사스럽던 부채 검사(劍士)의 선고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랑했으니 책임져’

설마가 사람 잡는 전통(?)은 21세기도 관통한다. ‘설마’에 이어지는 말은 십중팔구 ‘세상에 이런 일이’인데 같은 제목의 TV 프로그램은 20세기에 시작(1998)해서 지금까지 생존 중(SBS)이다. 놀라운 일이 얼마나 많길래 이 프로가 이렇게 장수하는지 그 사실 또한 놀랍기만 하다. 다만 27년 동안 앞에 붙어있던 ‘순간 포착’은 올해부터 ‘와! 진짜?’로 바뀌었다. 고심의 산물이겠지만 제목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동시에 들어간 건 이게 유일할 성싶다.

음악동네에도 느낌표, 물음표가 횡행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 이따금 풍파를 일으킨다. 가수 김현준은 1979년 영화 주제가로 데뷔했다. 그런데 곧바로 금지곡이 되고 만다. 제목이 죄목이었다. ‘순자야 문 열어라’ 수요일마다 ‘나는 솔로’에 매주 등장하는 친숙한 이름인데 그땐 왜 그랬을까. 처음 듣는 얘기라면 시간 날 때 옛날 신문을 뒤져 보기 바란다.

절치부심 김현준은 때를 기다렸다. 4년 후 가수 민해경과 듀엣으로 녹음했는데 이번에도 소동이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청소년들이 이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제목(‘내 인생은 나의 것’)이 질풍노도의 가슴에 불을 붙인 거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연속 4주 가요톱10 1위까지 했는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실종돼버렸다. 골든컵을 수상해서가 아니라 이번에도 금지곡 목록에 오른 거다. 설마 그 여파 때문은 아니겠지만 한 주 결방 후 가요톱10 1위로 떠오른 노래는 놀랍게도 윤시내의 ‘공부합시다’ 저절로 이런 말이 나오지 않는가. ‘헐! 세상에 이런 일이’ 그 당시 학생 신분이었다면 이 부분은 기억날 것이다. ‘안 돼 안 돼 선생님의 화난 얼굴이 무섭지도 않니’

누군가에겐 화가 나고 누군가에겐 화를 부른 이번 사태는 제목(‘내 인생은 나의 것’)보다 가사 내용이 더 큰 문제였다. 검열단이 주목한 부분을 발췌해본다. ‘사랑하는 부모님 부모님은 나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원하셨어요’ ‘언제나 나는 얌전하다고 칭찬받는 아이였지요’ 그러다가 화자는 문득 현실 자각에 도달한다. ‘그것이 기쁘셨나요. 화초처럼 기르시면서 부모님의 뜻대로 된다고 생각하셨나요’ 그러더니 갑자기 독립선언을 한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점입가경 급기야 부모를 다그치기까지에 이른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다시 한 번 돌아보세요. 그때는 아쉬운 마음이 없으셨나요’

누구는 사랑했으니 책임지라 압박하고 또 누구는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과연 사랑에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아니 그게 사랑이긴 했을까. 노래 하나가 문 열고 다가온다. ‘말해봐요. 말해봐요. 사랑이 죄인가요’(양수경 ‘당신은 어디 있나요’) 1990년 발표한 이 앨범엔 질문 형식의 제목이 하나 더 있다.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면 이별의 끝은 어디일까. 내 인생이 진짜로 나의 것이 되려면 이 질문들에 먼저 답을 준비해야겠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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