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13) 콘텐츠 기업 피플앤스토리 김남철 대표

 

웹소설 기반 웹툰 제작에 주력

경남벤처투자 ‘1호 기업’ 선정

 

원천스토리 IP 3000여개 보유

세계 23개 플랫폼 콘텐츠 공급

‘세이렌’은 내년 뮤지컬 무대로

 

대학 웹툰학과 신설 지원하고

게임·음악 등 ‘융합모델’ 추진

지역 콘텐츠산업 생태계 구축

김남철 피플앤스토리 대표가 8일 경남 김해 경남콘텐츠기업지원센터 3층 본사에서 드라마 제작이 예정된 웹툰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피플앤스토리의 대표 웹툰 작품인 ‘세이렌’ ‘약 파는 황태자’ ‘사부님들이 구독 중’.  백동현 기자
김남철 피플앤스토리 대표가 8일 경남 김해 경남콘텐츠기업지원센터 3층 본사에서 드라마 제작이 예정된 웹툰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피플앤스토리의 대표 웹툰 작품인 ‘세이렌’ ‘약 파는 황태자’ ‘사부님들이 구독 중’. 백동현 기자

김해=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

조선과 방산, 원전 등 기계산업 중심의 경남에서 웹툰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며 콘텐츠 산업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남철(55) 피플앤스토리 대표다. 웹툰 등 신산업을 배우기 위해 청년들이 서울로 떠나던 시기에, 그는 오히려 콘텐츠 산업의 중심지인 서울에서 경남 김해로 과감하게 본사를 옮겼다.

그가 김해를 주목한 이유는 분명했다. 일본에서 시작된 노래방이 부산에 상륙해 전국으로 확산됐듯, 일본 ‘망가’ 역시 부산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여지며 허영만 등 만화작가들이 활동했고, 자연스럽게 웹툰 작가층도 부산·경남에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공업 중심 산업에 콘텐츠를 접목하려는 경남도와 김해시의 적극적인 유치 정책이 더해지면서 그는 김해에 정착해 경남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던 콘텐츠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25년간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한 김 대표는 2014년 서울에서 웹소설 제작·유통 기업 피플앤스토리를 창업해 2020년 말 김해로 본사를 이전했다. 5년이 지난 현재 피플앤스토리는 3000여 개의 원천 스토리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미국, 베트남 등 12개국 23개 플랫폼에 웹툰 등 콘텐츠를 공급하는 글로벌 제작사이자 경남 대표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수도권 기반 기업이 지방 이전을 결단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김 대표는 8일 “당시 고객사와 파트너 대부분이 서울·경기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 이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역시 ‘서울이 시장의 중심’이라는 고정관념을 스스로 깨야 했다.

창업 후 웹소설 사업에서 웹툰 제작으로의 확장이 불가피함을 느낀 그는 웹툰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경남·부산을 주목했다. 마침 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경남콘텐츠기업지원센터가 서울의 콘텐츠 앵커기업을 모집하며 사무공간, 인건비, 투자 지원을 약속했고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피플앤스토리는 경남벤처투자의 ‘1호 투자기업’으로 선정돼 웹툰 사업 거점을 김해로 이동했다. 하지만 초기 정착은 쉽지 않았다. 작가 계약 외에는 인프라가 전무했고, 서울 직원의 지방 전환과 복지 문제, 작품 유통·관리 전문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당시 경남 산업 구조 또한 방산·우주항공·제조·물류에 편중돼 문화콘텐츠 산업은 행정 지원에서 소외돼 있었다.

김 대표는 “제조 중심 정책 속에서도 콘텐츠 산업이 반드시 자리를 잡아야 한다”며 행정권을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관련 조례조차 없고 공무원과 도의원, 시의원들의 이해도도 낮은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산업이 지역에서도 자생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그렇게 피플앤스토리는 김해에 어렵게 뿌리를 내리고 웹툰 산업에 전념하면서 세계 최초 웹소설 기반 대표작 웹툰 ‘세이렌’을 탄생시켰다. 세이렌은 카카오 페이지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블코믹스로 카카오 페이지와 카카오 웹툰에서 연재 중이며, 웹소설·웹툰 누적 조회 수가 1억9000만 뷰를 기록할 만큼 큰 인기다. 내년에는 뮤지컬로 제작돼 충무아트홀 무대에도 오른다.

콘텐츠 산업은 원천 스토리인 웹소설을 기반으로 웹툰이 제작되고, 웹툰이 인기를 끌면 드라마·뮤지컬·영화로 확장되는 구조를 갖는다. ‘미생’ ‘이끼’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은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성공 사례다. 드라마가 흥행하면 웹툰·웹소설이 다시 역주행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제작사·작가·PD 모두가 성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원천스토리 3000개를 보유한 콘텐츠 기업이 경남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김남철 피플앤스토리 대표가 소속 PD와 기획 중인 웹툰 작품을 상의하고 있다.백동현 기자
김남철 피플앤스토리 대표가 소속 PD와 기획 중인 웹툰 작품을 상의하고 있다.백동현 기자

◇지역과 청년과의 동반 성장 =피플앤스토리의 성장과 함께 지역 콘텐츠 생태계도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 김 대표는 본사 이전 직후 창원문성대의 웹툰학과 신설을 지원하며 기자재 비용 5000만 원을 직접 투자했다. 또 경남도와 함께 총상금 2억 원 규모의 ‘청년 대상 웹툰 공모전’을 2년 연속 개최하며 지역 청년 창작자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창원문성대 웹툰학과를 졸업하고 2021년 피플앤스토리에 입사한 변소영(24) PD는 ‘아기 약사 황녀님’ 웹툰을 기획해 현재 1612만 뷰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그는 “졸업 후 서울로 갈 계획이었는데 피플앤스토리가 김해로 내려오면서 지역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며 “기획한 작품이 성공해 성과급으로 작은 아파트도 마련하는 등 꼭 서울에 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남도 역시 문화콘텐츠 산업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육성에 나서고 있다. 도는 문화산업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다양한 콘텐츠산업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김해시는 ‘김해 웹툰 페스티벌’을 3년째 개최하며 청년 창작자 교류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콘텐츠 산업을 지원할 ‘경남 글로벌 융복합 콘텐츠산업타운’도 오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김해에 조성 중이다.

또 도내 콘텐츠 기업·투자기관·지방자치단체 등 80여 개 기업이 참여한 ‘경남콘텐츠산업협회’가 출범해 지역 단위 협업 플랫폼도 마련됐다. 이는 경남 콘텐츠 산업 전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려는 첫 시도로, 지역 기업 간 융합과 상생의 기반이 되고 있다.

피플앤스토리는 스토리·게임·웹툰·캐릭터·연극·음악 등 융합형 사업 모델을 적극 추진했다. 대표 사례로 한정판 굿즈와 실감형 체험 콘텐츠를 제공한 ‘NC 다이노스 팝업 프로젝트’가 꼽힌다. 다수의 지역 콘텐츠 기업이 협업해 하나의 융합 플랫폼을 만들었고, 이후 후속 사업으로 이어지며 지역 브랜드를 강화했다. 이러한 협업 구조는 기업 간 신뢰를 높이고 경남 콘텐츠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프로젝트와 연대 속에서 피플앤스토리는 김해 본사 직원 수가 초기 5명에서 현재 60명 규모로 성장했으며, 경남 콘텐츠산업의 핵심 앵커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23년에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의 공로로 대통령상 ‘청년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종합 미디어 기업 도약 준비 =피플앤스토리 매출은 2022년 105억 원에서 2023년 70억 원으로 일시 감소했지만, 올해 다시 100억 원 이상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웹툰·웹소설 산업이 과열 경쟁과 쇼트폼 콘텐츠 확산으로 성장세가 둔화된 시기였으나, 회사는 이를 조직 혁신의 기회로 삼았다.

내부적으로 조직 통폐합과 인력 재정비를 단행해 슬림화하고 효율성을 높였다. 외부적으로는 콘텐츠 IP 융합을 통한 종합 콘텐츠 그룹화 전략을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1년 6개월간 연극·뮤지컬 제작사와 드라마 제작사를 전략적으로 인수·합병해 K-콘텐츠 투자·제작이 가능한 종합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원천스토리·웹툰·뮤지컬·연극·드라마로 이어지는 선순환 콘텐츠 밸류체인을 완성했다.

현재 통합된 제작 거점은 김해 본사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년에는 확정된 드라마 4편, 세계 최초 웹소설 기반 뮤지컬 ‘세이렌’, 대형 연극 작품, 신규 웹툰 4종이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조선·원전·방산의 쇳덩이처럼 단단한 경남의 주력산업의 틈을 비집고 새로운 산업이 힘차게 움트고 있다.

경남문예진흥원, 6대 콘텐츠 전폭지원… 인디 뮤지션·e스포츠 선수 육성

 

창원서 5년간 2708명 인재양성

청년 창업·일자리 창출에 집중

수도권 이주 필요없는 환경 조성

경남 콘텐츠산업의 핵심 기업인 ‘피플앤스토리’가 김해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지역 콘텐츠 기업의 창업을 돕고 웹툰 작가를 비롯한 창작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경남도 출연기관으로, 현재 문화·콘텐츠·게임 등 6대 주요 콘텐츠 시설을 운영하며 콘텐츠산업 생태계 조성과 청년 창업·일자리 창출을 주도하고 있다.

6개 콘텐츠 시설은 인디 뮤지션을 양성하고 음반 제작 및 마케팅을 지원하는 ‘음악창작소(김해)’, 도내 문화산업 분야 스타트업의 시장 진출을 돕는 ‘콘텐츠기업지원센터(김해)’, 예비 창작자와 창업 초기(3년 이내) 기업을 지원하는 ‘콘텐츠코리아랩(창원)’, 웹툰 작가 양성과 제작을 담당하는 ‘웹툰캠퍼스(창원)’, 게임 기업을 육성하는 ‘글로벌게임센터(창원)’, e스포츠 대회 개최와 선수 육성을 담당하는 ‘e스포츠상설경기장(진주)’ 등이다.

이 같은 지원 인프라를 통해 경남 지역 청년들은 수도권이나 부산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콘텐츠산업을 배우고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됐다. 특히 피플앤스토리는 콘텐츠기업지원센터에 입주해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고, 후배 창업기업들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맏형’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2020년 창원에 문을 연 콘텐츠코리아랩은 지난 5년간(2020∼2024년) 2708명의 인재를 양성하고 이 중 155명의 취업을 견인했으며, 23건의 창업과 143억 원의 지원기업 매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웹툰캠퍼스는 입주 공간 지원을 통해 29명의 작가가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왔다. 임성훈 작가의 ‘새동네’는 2022년 경남웹툰캠퍼스 창작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된 뒤 이듬해 네이버웹툰 정식 연재를 시작해 현재까지 연재 중이다. 이 외에도 경남웹툰캠퍼스 입주작가의 작품인 ‘좀비묵시록 82-08’, 파운드 작가의 ‘내 부리에 키스해줘’ 등도 활발히 연재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창작비 지원사업을 통해 발굴한 이승우 작가의 ‘누가 죄인인가’가 네이버 지상 최대공모전 웹툰 부문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내년도 연재가 확정됐다.

김종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장은 “콘텐츠 분야에서 꿈을 이루려는 경남 청년들이 지역에서도 충분히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흥원 설립 취지”라며 “콘텐츠 기업과 웹툰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경남이 콘텐츠 산업의 변방이 아닌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영수 기자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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