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논설위원

‘나치(nazi)’란 말이 정치 일상어가 됐다. 국민의힘으로부터 나치라고 비판받던 이재명 대통령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뒤집는다든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나치 전범을 처리하듯이 영원히, 끝까지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내란 청산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나치라는 말을 썼다. 3일에도 “내란 사태는 진행 중이며 몸속 깊숙이 박힌 암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한 만큼, 색출 과정을 통해 내란 가담자로 드러날 경우 나치 전범에 버금가는 엄한 처벌이 뒤따를 것이다.

나치는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인 정치 세력을 뜻한다. 나치 정권은 의회와 헌법을 무력화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했기에 이와 유사한 정치 세력을 비판할 때 나치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야가 서로를 나치라고 공격한다. 2024년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금 윤석열 정권이야말로 나치 정권”이라고 했다. 올해 초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나치는 100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난 독재의 쌍둥이”라고 받아쳤다. 국민의힘은 여권의 사법부 흔들기와 입법 독주가 있으면 나치라고 비판했다. 윤 전 대통령도 서울구치소에서 “나치도 선거로 정권을 잡았는데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걱정된다”고 할 정도이니 이만한 유행어가 없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언어학적으로 화용론(話用論)이라 한다. 윤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한 말과 구치소에서 한 말은 단어는 같아도 다른 말이다. 같은 이치로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을 비판할 때 쓰는 나치와 이 대통령이 내란 가담자 처벌을 말할 때 사용한 나치는 전혀 다른 말이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쓴 것은 암울한 미래가 반드시 오기 때문이 아니다.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해 썼고, 우리는 그런 뜻으로 1984를 읽는다. 야당이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나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치가 돼선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통령의 나치 전범 처벌은 실제 그렇게 하라는 강력한 명령이다. 최고 권력자가 하나를 바라면 아래에선 10개 이상을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이 대통령의 나치 단어 사용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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