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희 경제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 및 일본과의 관세 협상에서 받아낸 총 7500억 달러의 양국 대미 투자 펀드를 재원으로 자국 내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각국 원전 업계에 조용한 파장이 일고 있다. 한국도 이미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지만, 미국 업체의 지식재산권 문제 등에 발목이 잡혀 이번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지재권 문제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원전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은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을 공고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사실 이미 원전에 관한 각종 원천 기술을 확보한 채로 한국 원전 업계에도 지재권이라는 ‘지분’을 요구하고 있는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업체들을 미국 현지 시장에서 완전히 따돌릴 수 있는 묘책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올해 1월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분쟁을 종결하고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까지 한 상태다. 이에 앞서 같은 달 한·미 정부도 양국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원전 협력 원칙을 재확인하고 민간 원자력 기술 이전 시 정보 공유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양국 간 수출 통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원전 수출 및 협력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터다.

이에 한수원은 미국에서 웨스팅하우스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는 방안도 미국 진출 방법의 선택지 중 하나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JV 설립이 이뤄져도 웨스팅하우스가 지재권을 무기로 한수원을 시공 업체로만 활용한다면 한국형 원전이 도입된 아랍에미리트(UAE)나 체코에서와 같은 진정한 의미의 ‘K-원전’ 진출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미국이 향후 건설할 신규 원전을 이미 웨스팅하우스의 대형 원전 노형인 AP1000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황에서 한국 업체의 원전 시공 분야 진출은 반쪽짜리 영광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에 국내 원전 업계와 전력 당국도 JV 설립에 대해 수익성 등을 놓고 면밀하게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미국 신규 원전 건설 시공에 한국 측이 참여한다고 해도 주기기인 원자로 시공이 가능한 대기업 외에 한국과 규격이 다른 보조기기 납품은 어려울 수도 있어 국내 납품 업체들에까지 수혜가 퍼져 나가기 어렵다는 우려도 크다.

결국 한국은 K-원전의 경쟁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밖에 없고, 그 방법은 더 많은 K-원전의 성공 사례를 쌓아가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독자 개발한 차세대 연구용 원자로 설계기술을 수출한 미국 미주리대 ‘차세대연구로 사업’ 같은 사례가 절실하다. 이미 안정적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UAE 원전뿐만 아니라 체코 신규 원전 건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재론의 필요가 없다. 또, 이 같은 성공 사례를 다져 나가는데 가장 밑바탕이 돼야 할 것은 K-원전의 본토인 국내 원전 시장이라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상식이다. 주기기를 시공할 대형 업체들뿐만 아니라 보조기기를 납품할 중소기업까지 포함한 원전 생태계가 살아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K-원전 미국 진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준희 경제부 차장
박준희 경제부 차장
박준희 기자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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