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 경제 발전에 결정적인 순간들이 존재한다.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 것인가 아닌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것인가 아닌가?

한국전쟁이후 세계의 최빈국이었고 기초적인 제품 외에는 만들지 못했던 한국이 반도체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이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소수의 기업인들과 정부 관료들이 가능성을 검토하여 과감한 투자를 한 결과 현재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자동차의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다.

이때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에 대한 투자를 망설였다면 현재 한국 경제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런 또 하나의 분야가 조선이다. 최근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도 세게 제일의 대한민국 조선이 큰 힘을 발휘한 것을 우리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이때 한 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어째서 선박과 반도체와 자동차를 만들기로 한 기업들이 항공 산업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

선박과 항공기는 언뜻 생각하기에 비슷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강과 바다를 가로지를 수 있는 배를 만들어온 경험이 있다. 비록 현대식 선박은 훨씬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지만 간단한 화물선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기술을 축적하여 복잡한 유조선까지 배워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하늘을 날아야 하는 항공기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일단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비행기를 제작해서 불과 37미터를 날았던 것이 1903년으로 122년 전의 일이다. 원시시원부터 존재했던 배와 비교하면 너무도 짧은 역사이다.

만들면서 배워본다는 생각으로 작은 비행기를 만들었다가 혹시 기술적 결함으로 그 비행기가 추락해서 인명사고라도 발생하면 그 기업은 도산하고 국가 신용도가 땅에 떨어지게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것이 비행기 제조이다.

선박은 반도체와 자동차와 같이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만 항공기는 무리라고 판단하였던 선배 세대의 판단은 아주 옳은 것이었다.

현재의 우리는 인공지능 산업에 대해 똑 같은 판단을 해야한다. Chat GPT의 등장으로 시작된 인공지능 사업은 인간 생활과 경제의 모든 측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중대한 산업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향후 경제 발전에서 다른 국가에 뒤쳐질 뿐 아니라 외국에서 개발된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국내의 모든 기업이 생산을 하고 소비자들이 소비 생활을 하게 된다면 외국에 한국 경제가 종속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인공지능 산업의 특성이 항공기 제조업과 같다고 하면 이 산업에의 도전은 오히려 국익을 해칠 수 있다.

즉 인공지능 산업은 항공기 제조와 같이 최선진국의 한두 곳에서 독점할 수밖에 없는가 아니면 조선 산업과 같이 한국이 뛰어들어서 미래에는 선두를 차지할 수도 있는가의 판단이 중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비싼 반도체를 수입해서 데이터 센터를 건설해야 하고 또 엄청난 첨단 기술 인력을 투입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 인공지능 산업에서 한국이 Chat GPT와 같은 세계적인 제품과 경쟁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설사 국제 경쟁력이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5천만 명의 한국인들만 사용해서는 투자된 막대한 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이 재계의 생각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인공지능 산업의 발전을 놓고 보면 이런 상황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히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Chat GPT의 성능에 근접하는 제품들이 나오고 있고, 엄청난 고가의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즉 인공지능 개발의 비용이 급속도로 내려가고 있고 그 기술 수준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고 있다.

인공지능은 항공기 제조가 아니라 선박 제조에 오히려 가까운 산업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기업들은 인공지능 산업에 신속히 뛰어들어야 한다.

다행히, 지난 8월 정부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정예팀을 선정, 글로벌 수준의 AI 모델 개발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또한, ’26년에는 산업생활공공 전분야 AI 도입을 위해 2.6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AI 대전환을 위한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면, 국내 인공지능 산업이 성장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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