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부터 소설로 습작했다. 시를 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소설가로 사는 동안 자주 시인을 부러워하긴 했다.…전철을 타고 가다가, 공원을 어슬렁거리면서 시 한편을 쓰려 했더니 언감생심이다. 나는 소설가라 그런지 결국 책상에 붙어앉아 시를 썼다.” (소설가 전경린의 ‘시작 노트’ 중)

소설가가 시를 쓰고 시인이 소설을 쓰는 크로스오버 개념의 책 ‘소설가의 시’, ‘시인의 소설’ 두 권이 최근 한 출판사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각자의 문학적 영역을 구축해온 소설가와 시인이 장르적 경계를 넘어서려 한 시도를 두고 독자들의 이목도 쏠리는 중이다. 책 중간에는 평소 도전하지 않던 분야의 작품 집필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 등을 토로한 작가들의 메모도 포함돼 있는데,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 때의 머뭇거림과 고통, 일견의 쾌감까지 느껴진다.

소설가의 시
소설가의 시

먼저 ‘소설가의 시’ 에는 권재이, 김도언, 김태용, 문형렬, 서하진, 은미희, 이만교, 이명랑, 전경린, 한창훈 등 10명의 소설가가 쓴 시 49편이 담겼다. 이번 책을 기획한 잉걸북스의 신승철 대표는 “소설가들의 시 창작은 주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다 채우지 못하는 내면의 불안이나 응축된 감정을 다루려는 욕구, 그리고 시가 가진 고유한 미적 특성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쓴 시는 일상적인 관찰부터 불안, 상실, 사회성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의자에 등을 대고/고개를 젖힐 때면,/한 계절 전에 내린 비가/방울방울 떨어진다./찢어진 우산처럼 천장이 운다.” (전경린 ‘사물이 우는 방식’)

특히 작가들은 책 첫장에 시집을 낸 소회를 담은 간단한 메모를, 책 중간에는 시작 노트를 별도로 남겼다. 소설가들은 대체로 “짧을 시를 쓰는 시인들이 부러웠다”면서 막상 시를 쓰게되면서 새로운 문학성과 마주하는 한편, 시와 소설의 차이를 더욱 극명하게 느꼈다고 토로했다. “시를 끄적이게 되면서 불안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게 되었다. 시는 소설처럼 불안의 구조와 그 전말을 보고하지 않고, 이를테면 그대로 맛보는 식이었다”(김도언 작가)는 내용도 포함됐다.

시인의 소설
시인의 소설

그런가하면, ‘시인의 소설’에는 강정, 김이듬, 박정대, 이승하, 전윤호 시인 등 5명이 참여했다. 소설집에는 중편소설 2편과 단편소설 3편이 담겼다. 현실에 기반한 서사를 통해 사회 시스템의 모순, 윤리적 부담감, 그리고 트라우마에 맞선 개인의 투쟁을 조명하려 한 시인들의 시도가 눈에 띄었다.

김이듬 시인은 중편소설 ‘불과 비’ 에서 시간강사인 ‘은’을 통해 개인의 정직성과 예술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사회를 그리면서도 그 속에서 상처받은 개인이 살아나가는 모습을 형상화 해냈다. 작품에는 시인이 직접 겪은 경북 산불의 기억도 등장한다.

시인은 지난 8월 해당 소설 집필 당시 가진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시적 자아와 소설 속 자아를) 넘나드는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흥미롭다”면서 “시인은, 작가는 무언가를 쓰면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밖에 강정 시인은 ‘유나’를, 박정대 시인은 ‘눈의 이름, 1644년 파리 무용총서’를, 이승하 시인은 ‘카지노의 별과 달’을, 전윤호 시인은 ‘창귀’를 써냈다.

‘시인의 소설’에 대해 하성란 작가는 “시인의 소설은 단지 장르의 이동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세계와의 거리를 다시 조정하는 특별한 순간”이라는 추천사를 남기기도 했다.

인지현 기자
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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