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논설위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간 지속된 일본 질서를 바꾼 인물로 평가된다. 전후 일본 질서는 평화헌법과 전쟁 포기가 핵심이다. 1950년대 초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의 이름을 딴 ‘요시다 독트린’을 말한다. 이는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통해 안보 문제를 미국에 의존해 군사적 재무장을 피하고, 경제 발전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는 경제 우선·평화 국가 노선이다. 이를 폐기하고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화’하고, 독자적 군사력, 국제정치 지위 강화를 추구한 보수 우익 노선이 ‘아베 독트린’이다.

아베 전 총리는 2014년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서 무력 사용을 포기한 평화헌법 제9조에 대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새로운 헌법 해석을 내놨다. 이듬해 야당과 시민단체의 강력 반발에도 이를 안보 관련 법제로 통과시켰다. ‘일본과 밀접한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을 경우 무력행사는 허용된다’는 내용이다.

아베는 총리에서 물러난 뒤 대만 유사(有事) 사태는 일본 유사 사태와 직결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2022년 7월 총격 피살 직전에는 한 칼럼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를 주장하기도 했다. 아베의 뒤를 이은 3명의 총리(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도 아베 독트린을 추종했다. 지난 10월 21일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갔다. 미·중 무력 충돌을 전제한 대만 유사 사태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존립 위기 사태라고 의회에서 발언해 대만 통일을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중국의 ‘레드 라인’을 건드렸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방위비 증액, 평화헌법 개정 추진은 물론 아베도 현직 때 찬성했던 ‘비핵 3원칙’(핵무기 제조·보유·반입 금지)을 바꿔 핵 반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베의 유산을 계승·확장하려는 다카이치 총리의 노선으로 중·일 갈등은 격화하고 있다. 다카이치 내각 지지도가 고공 행진을 하고 있어 양국 갈등이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중국과의 무역 협상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사태 중재에 소극적이어서 동북아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