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 타이드, 사상의 썰물과 밀물 - (3) 삼권분립
권력분립 사상의 초석 놓은 존 로크의 ‘이권 분립’
입법권 우월성 인정했지만 “힘 방치하면 주권침해” 우려
몽테스키외 “권력집중 막고 법의 지배 실현돼야 국가 지속”
美페더럴리스트 페이퍼 “법관의 강한 신분보장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11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권력에 서열이 있다”는 발언으로 삼권분립 논쟁에 불을 붙였다. 야당은 “삼권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 반헌법적 선언”이라며 반발했다. 거대 여당이 대법관 증원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추진 중인 가운데, 현직 대통령이 국회와 행정부가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삼권분립 시스템에 대한 엄중한 위협으로 느낀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며 서열을 매겼다. 그러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입법부에 국가 시스템을 설계할 권한이 있고,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이후 정부와 여당이 사법개혁 시도를 지속하며 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과 행보를 수백 년 전 사상가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삼권분립은 국가 권력을 입법·행정·사법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 기관이 독립적으로 기능토록 하자는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 원리다. 정치·헌법·철학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대통령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사상가들이 국민 주권의 위임 정도와 부여된 권력의 모습에 따라 삼권에도 격차가 있다고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힘의 차이를 방치하면 권력을 위임받은 권력자들에 의해 국민 주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상가들은 권력에 자제 능력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권력 간 상호 견제 시스템이 깨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고, 약한 권력을 보완하면서 강한 권력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더 나은 정치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이 같은 삼권분립은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와 로마 공화정에서 출발, 존 로크(1632∼1704)와 몽테스키외(1689∼1755)를 거쳐 미국 건국 과정에서 제도화되면서 점차 정교해지고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상호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받아들이거나 헌법에 반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집중된 권력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국가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시민의 덕과 공동선을 실현하는 장치”라고 밝혔다. 이를 전제로 “모든 권력은 집중되면 부패하기 쉽다”며 권력 분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발상이 시대를 따라 내려가며 각국에서 권력 집중을 경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만들어졌다.
근대 이후에는 권력이 권력을 감시·견제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옳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권력분립 사상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존 로크도 당시에는 현대적 의미의 삼권분립 대신 ‘입법권·집행권’과 ‘연합권’으로 나뉘는 이권분립을 제시했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정부가 존재하는 한, 모든 경우에서 입법권에 우월성(Supreme power)이 있고 최고 권력”이라고 못박기도 했다. 이런 논리라면, 로크는 ‘권력에 서열이 있고 입법권이 최우선’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크 역시 “정부의 권한이 제한되지 않으면 자유가 위협받는다”는 중대한 단서를 달았다. 기본적으로 위임과 시민 동의(consent of the governed)에 기반해야 권력에 정당성이 부여된다고 강조했다.
몽테스키외는 현대적 의미의 상호견제 개념을 도입한 ‘삼권분립’을 최초로 제시하며 한 발 더 나아갔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뤄야, 그 틀 안에서 시민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고 봤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로마를 포함한 역대 국가들이 멸망한 공통 원인을 분석했는데, 국가는 도덕성이나 지도자의 자질이 아닌 체제를 지탱하는 정신이 부식됐을 때 망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문에 삼권분립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권력의 집중을 막고, 시민들의 도덕적 기반 위에 세워진 ‘법의 지배’가 실현될 때 국가가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시민이 자유로우려면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데, 동일한 인간이나 단체의 손에 입법권과 집행권이 결합돼 있으면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권이 입법권·집행권에서 분리되지 않으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나머지 선출된 권력에 밀리거나 결탁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몽테스키외는 “재판권이 입법권에 결합되면 재판관이 곧 입법자이기 때문에 시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력 행사가 자의적일 것”이라며 “법률을 제정하는 권력과 공공의 결정을 실행하는 권력, 범죄나 개인들의 분쟁을 심판하는 권력을 모두 행사한다면 (공동체를) 망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몽테스키외에게서 영향을 받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사법부에는 더 강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은 미국 헌법 해석 자료인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78편 사법부(The Judiciary Department)에서 “권력을 분리해 서로 견제하게 하는 것이 다수의 전횡을 막으면서 정의로운 정책을 실현하는 길”이라면서도 “사법부는 입법부·행정부와 달리 힘(force)도 의지(will)도 없이 오직 판단(judgement) 권한을 갖기 때문에 가장 덜 위험한 권력기관(the least dangerous branch)”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근거로 법관에 대한 강한 신분보장, 법원의 사법심사(Judicial Review) 권한 등 삼권의 한 축을 보강하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유에 대해서는 “헌법은 국민이 수여한 것이고 의회는 단지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일 뿐”이라며 “재판부는 의회가 아닌 국민의 의사와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신생 국가 미국의 체제를 진단한 저서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계적 권력 분립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토크빌은 “선출 권력 중심 민주주의에서는 전횡이 초래된다”며 다수의 횡포에 대해 경고했다. 토크빌은 “시민사회와 언론, 지역사회의 자발적 참여가 있어야 지속가능한 권력 견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진 결과, 대리인에게 무한한 권력을 위임하는 ‘민주적 전제정치’의 출현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폴란드, 대법관 조기퇴임·멕시코는 판사 직선제… 잇단 ‘판결 정당성’ 논란
■ 사법부 흔든 나라들
대통령과 다수 여당 주도로 사법부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던 국가들이 최근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 수준이 낮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폴란드 집권당이었던 ‘법과 정의당(PiS)’은 지난 2018년 대법관의 정년을 낮춰 조기 퇴임시키는 방식으로 법관 물갈이를 시도했다. 명분은 ‘국민의 뜻’과 ‘사법부 부패 척결’이었다. 이듬해에는 정권에 비판적인 판사를 징계할 수 있는 징계위원회까지 대법원에 설치됐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다년간의 심리 끝에 “폴란드 정부가 사법 독립 원칙을 침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유럽연합(EU)도 법치주의 훼손과 EU법 위반을 이유로 폴란드에 제재를 가했다. 폴란드는 2023년 정권교체 이후 뒤늦은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에는 EU 집행위원회에 ‘법치주의 회복 계획’을 제출했다. 하지만 사법개혁 이후 임명된 판사와 이들이 내린 판결에 대한 정당성 논쟁이 불거지는 등 내홍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멕시코에서는 지난해 9월 판사 직선제가 의회에서 통과됐다. 그 결과, 대법관을 포함한 연방판사 881명을 뽑는 국민 직접 투표가 지난 6월 시행됐다. 2027년에는 판사 1880명이 추가로 선출된다. 멕시코 정부와 여당은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 참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비정부기구인 휴먼 라이츠 워치는 “멕시코 사법부가 행정부 영향력 아래 놓였고 독립성이 훼손됐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헝가리와 베네수엘라도 최근 ‘부패 정화’를 명분으로 정부 기관에 판사 징계권을 부여하거나, 의회 주도로 대법관 수가 대폭 늘어난 국가들이다. 이들은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V-DEM 자유 민주주의 지수’ 순위가 경제 규모에 비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기준 폴란드는 46위, 멕시코 108위, 헝가리 95위, 베네수엘라 168위다. 한국은 41위다.
■ 참고
법의 정신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174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익명으로 발간한 총 31편의 저서. 삼권분립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현대 민주주의 체계와 전 세계 헌법에 영향을 미친 고전.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알렉산더 해밀턴 등 미국 연방주의자 3명이 1787∼1788년 뉴욕시(市) 신문에 필명으로 기고한 85개 논문 모음집.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서는 삼권분립 체제가 필수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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