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선(오른쪽) 충남소방본부장과 이효진 충청남도의용소방대 연합회장이 지난 3일 함께 손을 잡고 밝게 웃고 있다. 문호남 기자
“소방대원들은 집이 다 타버린 사람들을 두고 돌아와야 하는 슬픔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요.”
지난 3일 충남 홍성군 충청남도소방본부 청사에서 만난 성호선(57) 본부장은 이같이 말하며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충남소방본부는 소방관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기부 프로그램인 ‘가치가유 충남 119’(가치가유)를 진행 중이다. 성 본부장은 “구급차를 이용하는 환자를 이송할 때도 우리가 병원에서 집까지 편하게 다시 모시고 싶지만, 정책상으로 불가능했다”며 “우리 대원들은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는 절망에서, 오히려 ‘내가 직접 돕겠다’는 열망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국민 누구나 위험에 처했을 때 찾는 119 소방대원으로서 마주했던 한계를 스스로 깬 것이다.
가치가유는 사고, 질병, 장애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취약계층의 일상 복귀를 돕고자 지난 2021년 2월 시작한 충남소방본부만의 기부 프로그램이다. ‘하루 119원의 기적’이라는 신조 아래 소방대원과 의용소방대원을 주축으로 하루에 119원씩 자발적으로 기부받아 운영된다. 이 사업엔 소방대원이 아닌 기업과 일반인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최근에는 대전 소재 한 화상치료전문병원장으로부터 1000만 원을 기부받기도 했다. 현재는 소방대원과 의용소방대원 8900명 그리고 충남 도내 8개 기업이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사회의 자발적 참여로 매년 2억 원의 성금이 모이면서, 5년째에 접어든 올해는 누적 성금이 11억 원을 돌파했다. 충남소방본부는 조성된 성금으로 중위소득 80% 미만의 취약계층에게 현금을 지원하거나, 전통시장 화재로 피해를 입은 상인 등에 점포 재건에 필요한 물품을 기부하는 등 ‘맞춤형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지금까지 472가구에 총 8억8000만 원을 지원한 이 프로그램은, 충남 지역을 선도하는 사회공헌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성 본부장은 가치가유 사업의 가장 큰 장점에 대해 “신청주의 복지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기존 복지 모델은 대상자가 직접 복지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지만, 이 사업은 소방대원들이 직접 현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발굴하기 때문이다. 성 본부장은 “30년 동안 농사일만 해왔던 사람들은 피해를 입어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례 파악과 신청 모두 우리가 직접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시작된 관심이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는 구조여서 ‘세 모녀 사건’처럼 반복되는 복지 사각지대 문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소방대원들은 화재나 사고 현장에서 발굴한 취약계층의 위험 정보를 지역 내 공공기관 복지 부서, 봉사단체 등과 함께 구성한 ‘가치가유 충남119 서포터즈’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한다.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현장을 직접 방문해 구체적인 필요 사항을 확인하고 심의를 거쳐 지원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가치가유’의 정신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대들보는 의용소방대원이다.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동네 선배들의 권유로 의용소방대에 가입했다는 이효진(62) 충청남도의용소방대연합회장은 “의용소방대로 활동하면서 생업을 반은 포기했다”며 “이 활동에 매진해야 한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의용소방대는 화재 현장 보조, 수해 현장 봉사활동은 물론 농촌의 독거노인을 위한 말벗 서비스 등도 제공하는 동네의 ‘파수꾼’이다.
이 회장은 가치가유 사업을 통해 만난 인연 중,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를 모시던 고교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병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는 혼자 남을 손자 걱정에 의료시설 입소를 거부했지만 손자가 울면서 ‘할아버지 병원 가야 한다’고 말하던 순간이 계속 떠오른다”며 “지원 과정에서 손자의 꿈이 성우라는 것을 알게 돼 꿈을 계속 도와줄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도 같이 해줬다”고 말했다.
물론 사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도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수많은 사례자 중 명확한 원칙을 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 본부장은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지원 대상자를 객관적으로 선정하기 위해서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지원해야 하는지 체계를 정립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충남소방본부는 올해 3월 ‘가치가유 충남119 운영규정’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지방자치단체 복지 부서와 협력, 대상자를 발굴한 뒤 심의위원회를 거쳐 지원의 객관성·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성 본부장은 “저에게 기부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따뜻한 응답’과 같다. 특히 가치가유 사업을 통해 작은 도움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다시 시작할 힘이 된다는 점을 배웠다”며 “앞으로는 취약계층을 더욱 정교하게 발굴하기 위해 현장 정보와 사회복지 데이터 연계를 더 강화해 지역의 안전 수준을 높이고 싶다”고 공언했다. 이 회장도 “예전에는 기부를 단순 금전적 도움으로 생각했지만, 도움받은 사람들이 호박을 한 바가지 싸주면서 사람의 정을 느끼고 있다”며 “의용소방대 활동은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매력적이다. 100세까지 봉사하며 살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