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내려면 알 수도 있겠지만,/ 송이고랭이 엽초와 수과에 닿는/ 첫 느낌은 알 수가 없다// 흐르는 개울에 닿자마자 물로 사라지는,/ 들판에 남아 마지막까지/ 버티는 눈의 부분으로는, 끝끝내/ 옮겨갈 수 없는/ 이 더듬거림에.

- 채호기 ‘눈’(시집 ‘이상한 밤’)

눈이 온다더니 쾌청하기만 한 오후. 괜히 시무룩하다. 매년 겨울 보는 눈인데 그게 뭐라고 나는 눈을 기다리고 있다. 올겨울 첫눈,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신호를, 장갑이니 빗자루니 하는 것을 꺼내 두고서, 언제 찾아올지 모를 반가운 손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밤이 다 되어서야 눈이 내린다. 이내 굵어지더니 세상 죄 뒤덮을 기세다. 오가는 사람들, 신나 보인다. 첫눈의 매력은 기분에 있다. 아름답고 쓸쓸하고 애틋한 첫눈에 먼저 젖는 건 아무래도 마음이지 싶다. 더 쌓이기 전에 얼어붙기 전에 눈부터 쓸어야 할 텐데, 나는 두고 본다. 아이 둘이 눈을 굴리며 지나갔기 때문이다. 뭉친 눈을 서로에게 던지며 웃고 떠드는 연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뽀득뽀득 크고 작은 발걸음이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나는 생각한다. 대체 눈이란 무엇인가. 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손에 쥐면 물이 되고 마는 눈. 단단히 뭉쳐 놓아도 다음 날이면 사라지는 눈. 그러니 가질 수 없는 눈. 세상에 없는 색으로 하얗게 빛나는 저것. 하늘하늘 내려와 닿으면 차가움만 남기고 사라지는 물질.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나라도 있다는데, 그곳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허망할까. 아니, 그곳의 허망함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나라의 사람들은 참으로 겸손할 것이다.

거침없이 내리더니 뚝, 그치고 만다. 그런 뒤의, 알 수 없이 포근한 적막. 이것도 눈이다. 자 이제 눈을 쓸어야지. 이 동네에는 노인이 많다. 보기보다 미끄럽고 위험한, 이것도 눈의 일부. 올겨울엔 몇 번의 눈이 내릴 것인가. 가만 짐작해 보았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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