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인·태 안보질서의 주요 액터 돼야 … 美와의 원잠 협의 진척 따른 전략적 재설계 절실
미국 백악관이 최근 공식 발표한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이하 ‘2025 NSS’)의 핵심은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종료까지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와 세계 각지의 분쟁 관리에 나서는 ‘해결사’ 역할을 자임했으나, 2025 NSS는 이러한 시대의 종식을 선언했다. 미국은 더 이상 국제 분쟁에 전면 개입할 의지가 없으며, 국가 운영체계 강화, 제조업 기반 복원, 국경 통제, 이민 관리, 공급망 재편 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국제질서 유지를 위해 감당해 온 부담을 동맹·우방국과 분담하며 이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높이려는 미국 자체의 구조조정이다.
◇NSS의 전략 기조
2025 NSS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반구가 인도·태평양 지역보다 우선순위가 높다는 점이다. 서반구에 중점을 둔 진짜 이유는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 지역에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중남미에서 중국이 문제라면, 중국의 전략적 최우선 지역인 인·태 지역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갑자기 그 중요성이 떨어질 수는 없다. 중국의 존재감이 급속도로 상승해 미국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지역이 바로 인·태 지역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의 안보 전략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7년(트럼프 1기 행정부) NSS, 2022년(바이든 행정부) NSS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2017 NSS는 중국과 러시아를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수정주의 국가’로 규정하며, 이들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우위와 리더십 유지를 핵심 전략 기조로 삼았다. 특히 북한 문제는 위협 목록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미국 본토와 동맹을 동시에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라고 명시했다. 즉, 2017 NSS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전까지는) 북한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흔드는 중요한 변수로 취급했고,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는 이러한 위협을 관리하는 핵심 제도적 장치로 간주했다.
2022 NSS는 미국과 수정주의 세력 간의 경쟁 구도를 계승하면서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가치(value) 프레임을 도입했다.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을 미국의 가장 강력한 전략자산으로 명시했다. 따라서 인·태 전략은 2022 NSS의 중심축이고, 한국·일본과의 협력은 인·태 전략 속에서 핵심적 위치를 점했다. 특히 북한은 ‘심각한 핵·미사일 위협’으로 분명히 규정됐고, 군사적 억제와 외교의 병행이라는 이중 전략을 공식화했다.
◇사라진 북한 이슈
2025 NSS는 중국의 경제적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희토류 등 핵심 광물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확대하는 방안, 인공지능(AI)·바이오·양자 등 첨단 기술 영역의 미국적 표준 확립 등 ‘경제안보’ 강화에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런데 북한이 보고서에서 사라졌다. 대신 인·태 지역의 ‘제1도련선’ 내 어디서든 공격을 거부할 수 있는 미군과 동맹국들의 능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2025 NSS가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더 이상 ‘전략적 핵심 변수’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으로 읽힐 수 있다. 미국의 인·태 전략은 제1도련선 내 중국 견제가 절대적 우선순위를 차지하며, 이를 위해 동맹국들과 협력하는 것이다. 북한은 ‘관리 가능한 위협’ 수준으로 밀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이는 대만해협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의 대응을 분산시키기 위해 북한이 대규모 대남 무력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이 간과하거나 가볍게 보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는 한미동맹이 북한에 대한 억제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억제 역할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약화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지난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SSN·원잠) 확보는 전략적 의미가 적지 않다. 원잠은 재래식 디젤잠수함(SS/SSK)과 달리 ‘원양작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략적 지평이 한반도에서 인·태 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국은 한국이 원잠 확보 결정을 계기로 단순히 한반도 방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개방된 인·태 지역을 위한 연합 억제 체제 속에서 미·일과 함께 ‘전구급 플레이어(theater-level player)’가 되길 기대할 것이다.
◇전략적 방향
전구급 플레이어가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첫째, 지정학적 차원에서 한반도를 넘어 인·태 지역 전체의 안보와 번영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둘째, 해양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 한국이 동참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 구도에 일정 부분 역할을 맡는다. 셋째, 군사적으로 한반도 방어적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 연합작전이나 지역 안정화 노력에 참여할 수 있는 장거리 작전 수행 능력을 한국이 갖춘다.
여기서 한국의 전략적 고민이 시작된다. 2017년 사드(THAAD) 사태 이후 한국의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낮아지고 미국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중국이 1위이다. 중국이 한국에 경제적 강압을 가할 때 미국이 한국을 위해 중국에 경제적 강압 조치를 가할 준비가 돼 있지 않는 한, 한국이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견제하겠다는 ‘전략적 명확성’을 서둘러 내세우는 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은 원잠 건조에 필수적인 우라늄 농축 문제에 관한 미국과의 협의 진척도에 따라 전략적 모호성을 점진적으로 완화해 나가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전략적 방향성은 명확해야 한다.
2025 NSS는 미국이 글로벌 책임을 축소하고, 동맹이 그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했다. 이러한 추세는 트럼프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25 NSS는 한국에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전략적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속칭 ‘한반도 천동설’에서 벗어나 동맹 및 우방국과 인·태 지역의 포괄적 안보 질서 확립에 주요 행위자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미국도 한반도 안보에 지속적 관심과 자산을 투입할 것이다.
고려대 경제기술안보연구원장·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 용어설명
‘국가안보전략(NSS)’이란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의 최우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군사·경제·국내 정책의 종합적 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전략문서. 트럼프 2기의 2025 NSS가 최근 공개돼.
‘제1도련선’은 일본 남부와 오키나와-대만-필리핀-보르네오를 잇는 섬들의 호(arc). 로버트 카플란은 ‘지리의 복수’에서 중국이 전략적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차단선으로 규정.
■ 세줄 요약
NSS의 전략 기조: 2017년 트럼프 1기 때에는 중·러를 수정주의국가로 규정하고 북핵을 미 본토·동맹을 위협하는 중대 도전으로 명시. 2022년 바이든 때엔 인·태 전략과 한·일 협력, 북한의 심각한 핵·미사일 위협을 강조.
사라진 북한 이슈: 2025 NSS에서는 중국의 경제 위협을 강조한 반면, 북한은 완전히 사라져. 한반도가 더 이상 전략적 핵심변수가 아니라는 인식을 보인 것.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
전략적 방향: 2025 NSS는 미국이 글로벌 책임을 축소하고 동맹이 그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 한국은 동맹·우방국과 인·태 지역의 포괄적 안보 질서 확립에 주요 행위자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