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아이폰을 처음 선보인 것은 2007년이다. 멀티 터치스크린과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휴대폰을 재발명했다는 평가까지 받은 아이폰은 냉전 시대 미국 문화를 대표하던 코카콜라처럼 세계화 시대 유일 슈퍼 파워의 상징물이 됐다. 아이폰 뒷면엔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됐다’(Designed by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는 마크가 붙어 있다. 디자인 등은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에서, 칩 생산 및 본체 조립은 중국에서 했다는 표시다. 엄밀히 말하면 중국산이란 의미다.

잡스가 처음부터 중국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팟 등에 집중하던 2000년 당시만 해도 잡스는 애플 자체 공장에서 생산하려 했지만, 2005년이 되자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자 패트릭 매기는 저서 ‘애플 인 차이나’에서 애플 직원이 미국에서 만들자고 하자 잡스가 “해봤어요. 안 되더라고요”라고 답했다고 기록했다. 애플은 저임금 고숙련 노동력을 좇아 중국으로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애플은 칩 생산 등 모든 공정을 중국에 아웃소싱했고, 이를 위해 훈련시킨 노동력은 2800만 명이나 된다. 애플이 키워낸 이 첨단 제조 인력은 시진핑(習近平)의 ‘제조 2025’ 프로젝트 성공 기반이 됐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효율성이 중시되던 세계화 시대엔 중국산 아이폰이 문제가 안 됐지만, 지금은 경제안보가 최우선인 신냉전 시대다. 애플이 패권도전국 중국을 돕는 것을 방관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4월 “애플이 미국으로 올 것”이라고 했지만, 첨단 제조업 기반이 붕괴된 미국에선 아이폰 생산이 불가능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애플이 내놓은 대안은 텍사스에 AI용 칩생산시설 조성인데, 고용은 2만 명 수준이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떼돈을 벌수록 중국의 첨단 제조업은 고도화한다. 아이폰의 성공이 미국에 비수가 된 역설적 상황을 잡스는 저세상에서 어떻게 볼까. 삼성전자는 애플의 견제 속에서도 자체 칩 생산시설과 디자인으로 2010년 갤럭시S 첫선을 보인 뒤 스마트폰 양강 구도를 구축했다. 미·중 압박을 뚫고 진격하는 ‘한국의 애플’ 삼성전자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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