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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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인 ‘청련 이후백’(1520~1578)의 시문과 생애 기록을 총집대성한 ‘신편신역 청련집’이 출간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이를 기념하는 강연회도 오는 13일 서울 프레스센터 서울클럽홀에서 개최된다.

11일 연안이씨 종친회 등에 따르면 이번 신편신역 청련집은 이철진 연안이씨 청련군파(靑蓮君派) 회장(김앤장 변호사)과 종친회의 노력으로 완결됐다. 심경호 고려대 명예교수가 번역과 주석을 맡았다. 심 교수는 기존 자료에서 발견됐던 누락과 중복을 바로잡고 추가로 확인된 시편과 문헌까지 포함해 새롭게 구성했다.

이후백은 연안이씨 가문의 명인으로, 경상도 함양군 우암촌에서 태어나 9세에 양친을 여의고 백부 이국권의 집에서 자랐다. 명종 18년인 1563년 승정원이 뽑은 호당(湖堂) 8인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했다. 호당은 독서당의 별칭으로, 젊고 유능한 문신을 선발해 이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한 데서 비롯된 제도다. 당시 호당에 들어가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겼다.

청련 이후백 영정
청련 이후백 영정

이후백은 59세로 사망하기까지 24년간 조정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호남 암행어사도 지냈고, 대사간⋅이조판서⋅호조판서 등 굵직한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51세 되던 1570년에는 승정원 도승지로 있으면서 ‘국조유선록서(國朝儒先錄序)’를 지어 올리기도 했다. 국조유선록은 선조의 명으로 1570년에 조선 유학자의 저작을 모아 엮은 것으로, 조선 유학의 도통을 공식적으로 확립하는 매우 의미 있는 서적이다.

52세 되던 1571년(선조 4년)에는 예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제학을 배수했다가 이조 참판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53세에는 예문관 제학을 배수했다.

특히, 1573년에는 종계변무 정사(宗系辨誣正使)로 공적을 세우기도 했다. 1574년 형조판서가 되고 다음 해 함경도 관찰사가 돼 선정을 베풀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은 훗날 목민심서에서 이후백이 함경도의 궁핍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관아의 비용을 줄이고 부세를 감면해 주는 등 그의 정책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이이 역시 함경도 관찰사로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관찰사로 변경의 각 진영을 순시할 때 이후백의 지적을 받지 않은 진영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후백은 그 중 한 진영을 맡고 있던 이순신의 비범함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이순신을 격려했다고 한다. 이후백의 공직관은 향후 이순신 장군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종중은 밝혔다.

청련 이후백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다.
청련 이후백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다.

이철진 회장은 “이 책은 단순한 문집의 재번역을 넘어, 500년을 이어온 청련공의 정신을 시대적 언어로 완벽하게 복원하고, 공의 삶과 사상을 후대에 정확하고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연안이씨 종중의 숭고한 문화적 사명 선언”이라며 “종중은 시대의 혼탁함 속에서도 맑고 ‘푸른 연꽃’처럼 세상을 비추고자 하셨던 청련공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 후손들은 물론, 이 땅의 모든 지식인들과 공직자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과 사표(師表)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임대환 기자
임대환

임대환 기자

디지털콘텐츠부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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