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JTBC·김부장 이야기)는 올해 가장 ‘논쟁적인 드라마’ 중 하나입니다. 서울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집값을 걱정하는 가장으로서 김낙수(류승룡)의 삶에 공감한다는 반응과 더불어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PTSD 온다. 못 보겠다”는 반응이 엇갈렸기 때문이죠.
요즘 연말 모임에 가면 ‘김부장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그 중 인상 깊은 반응이 하나 있었죠. “이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아내의 이야기’로 보는 것이 옳다”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김부장의 삶은 어찌보면 아내인 박하진(명세빈)을 만나고 결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요. 이 많은 것을 일구기 위해 언뜻 김부장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든든한 아내가 곁을 지켰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김부장에게는 여러 ‘전리품’이 있습니다. 삶이라는 전장에서 살아남은 김부장은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 그리고 명문대에 다니는 아들을 둔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달았죠.
그런데 하나씩 따져보면, 서울 자가는 박하진의 결심으로 마련했습니다. “무슨 집을 사?”라는 김부장의 타박을 뒤로 하고 박하진이 과감하고 아파트를 매입한 것이 ‘신의 한 수’였죠. 그가 주말과 주중을 가리지 않고 회사 업무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처녀 시절에는 ‘카드 영업의 여왕’에 올랐던 박하진이 사회 생활을 포기하고 전업주부로서 남편을 지원한 결과인데요. 아들 역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많은 속내를 공유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김부장은 박하진이라는 영양분 많은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기에 쓰러지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랬던 김부장이 퇴직 후 자랑스럽게 내밀던 명함을 잃게 됩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귀가한 남편에게 박하진은 농담을 건넵니다. “어이~ 김 백수∼. 퇴직금 얼마 나왔어? 내가 100만 원 주면 내가 아주 라면을 기똥차게 하나 끓여 준다.” 어딜 가도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김부장, 아니 김백수는 슬픈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고, 박하진은 양팔을 크게 벌려 그를 안아 줍니다. 그리고 한 마디하죠. “고생했다. 김 부장.” 7회의 엔딩인 이 장면은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장 빛나는 한 토막입니다.
실직 후 ‘김부장이 불쌍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요. 분양 사기까지 당해 이제는 자가도 없고, 대기업에 다니지도 않고, 부장이라는 타이틀도 없기 때문이죠. 25년 직장 생활 끝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김낙수가 가진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제목에서 빼먹었습니다. 바로 아내 박하진인데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며 지혜로운 아내를 둔 김부장 이야기’로 제목을 수정해야 옳다는 겁니다. 여전히 김낙수의 곁은 ‘지혜로운 아내’가 지키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박하진은 남편 대신 주저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듭니다.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적은 돈을 벌어도 기뻐하며 “피자 시켜먹자”고 하죠. 그런 박하진의 삶이 누군가에게 짠해 보일 수 있지만 정작 그는 남편을 향해 “짠하다”고 말을 합니다.
이 드라마가 끝난 후 박하진 역을 맡은 배우 명세빈과 만나 인터뷰를 나눴는데요. 명세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낙수, 넌 왜 그렇게 짠하냐?’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풍파를 겪고 실패하더라도 버티는 그 모습을 보며 ‘짠하다’고 느끼는 게 사랑 아닐까요? 가족끼리 싸우기도 하고 팽팽한 긴장감도 있지만 ‘수고했다’ ‘고맙다’ 이 한마디로도 큰 위로를 얻게 돼요.”
김낙수는 이제 대기업에 다니지 않습니다. 대신 세차를 해서 돈을 벌죠. 누군가 “부장님∼”이라고 깍듯이 부르지는 않지만, “차, 진짜 깨끗하네요”라고 만족감을 드러내는 손님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지는데요. 그의 세차는 세속에 찌든 그의 삶을 벗겨내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수식어가 사라져도 김낙수가 박하진의 남편, 김수겸의 아버지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안진용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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