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표 여성 문학가 제인 오스틴(아래 그림)과 18~19세기 영국 문단을 풍미하며 오스틴에게도 영향을 미쳤지만 문학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여성 소설가들(위 그림).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랜시스 버니, 앤 래드클리프, 샬럿 레녹스, 해나 모어, 마리아 에지워스,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샬럿 스미스, 헤스터 린치 스레일 피오치. 휴머니스트 제공
‘오만과 편견’ 만큼, 꾸준히 사랑받고 다양한 매체에서 재탄생한 고전은 그리 많지 않다.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제인 오스틴(1775∼1817)에게 “영문학사 최초의 위대한 여성 작가”라는 평가를 더해준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만과 편견’이라는 문구가 이보다 불과 14년 앞서 출간된 여성 소설가의 책에 먼저 등장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게다가 그 책의 저자가 오스틴보다 먼저 18세기 영국 소설의 부흥기를 이끌었고, 오스틴 역시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더 이상 지나치기 어렵다. 어떤 문학가도 진공상태에서 탄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오스틴을 만든 데에는 그녀들의 공이 적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한때 오스틴의 책장을 빼곡히 채운 책들의 저자였고, 당대 주목받는 작가였던 여성 소설가들은 왜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까? 오스틴의 열렬한 팬이었던 저자는 희귀서 수집가이자 딜러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이런 의문을 파헤쳐나간다. ‘오스틴만이 영문학사 최초의 위대한 여성 작가’라는 주장은 오히려 오스틴이 남긴 소설과 편지를 집요하게 추적해가다 보면 빈약함을 드러낸다. 오스틴은 비슷하거나 조금 앞선 시기를 살았던 여성 작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받았고 이를 숨기지 않았다. 저자는 ‘숨겨진 여성 소설가’ 8명의 희귀서를 수집하고 이들의 문학적 성취를 확인하면서 말한다. “이들은 그저 모종의 이유로 공격받고, 생략되고, 폄하되고 정전에서 밀려났을 뿐이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문구는 오스틴이 살아 있던 시절 가장 유명했던 여성 소설가 중 한 명, 프랜시스 버니(1752~1840)의 1782년 작 ‘서실리아’에 먼저 등장한다. “만약 그대들의 불행이 오만과 편견 때문이라면, 선과 악은 너무나 기막히게 균형을 이루는 법이니, 그 불행의 종식 또한 오만과 편견 덕분일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그것. 심지어 오스틴은 자신의 다른 작품에서 ‘인간 정신의 위대한 힘을 유감없이 드러낸 소설 세 편’을 꼽는데 그중 두 편이 버니의 작품이었다. 문학평론가로서 당대 최고의 권좌에 있던 새뮤얼 존슨에게 칭송받고, 국왕과 왕비까지 사로잡아버린 ‘슈퍼스타’ 버니가 오스틴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버니는 당대에서 보기 드물게 인간의 복잡한 감정선을 생생하게 재현한 ‘에블리나’를 펴냈는데, 책은 출간되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에블리나의 주인공은 자신이 직접 행복한 결말을 고를 권리를 주장하고, 승리까지 거머쥔다. 오스틴이 작가로서의 역량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18세기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소설 출간이 남성보다 많던 때”였는데 이 흐름을 버니가 주도했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 사실주의 작가로 칭송받던 버니에 대한 평가는 점차 고꾸라진다. 오스틴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몇몇 남성 비평가들이 버니를 ‘대결에서 패배한’ 선행자로 깎아내렸다. 저자는 1988년 출간된 버니 전기를 인용해 이를 지적한다. “마치 여성 소설가에게 할당량이 있는 것 같다. 한 세기당 한 명, 끽해야 반 세기당 한 명이면 족하다는 투다. 우리에게 이미 제인 오스틴이 있으니 그 자리가 찬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딕소설의 대가로 불렸던 앤 래드클리프(1764∼1823)는 어떤가. 오스틴의 작품 ‘노생거 사원’ 속 주인공이 “읽는 동안만큼은 누구도 나를 비참하게 하지 못할 것 같은 책”이라고 지목한 ‘우돌포의 비밀’이 바로 래드클리프의 저작이다. ‘우돌포의 비밀’의 성공과 영국 내 순회문고의 유행, 문해율 상승이 맞물려 당대 고딕소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래드클리프가 유행시킨 고딕소설은 여성이 주도한 장르였다는 이유로 남성 비평가들에게 ‘문학적 매춘’으로 매도됐다. 대중 앞에 서길 꺼려 했던 래드클리프는 점차 ‘호러병’을 앓은 정신이상자라는 소문을 얻고 문학적 성취까지 평가절하됐다.
‘기지(wit)의 대가’라는 오스틴에게 붙여진 평가도 사실은 샬럿 레녹스(1729~1804)에게 먼저 주어진 것이다. 다른 여성 문인들과 달리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했던 레녹스는 세르반테스의 저작과 동등한 위치에 놓인 것으로 평가받기까지 했던 저작 ‘여자 돈키호테’로 일약 주목받았다. 오스틴은 1807년 언니 커샌드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책에 대해 “크나큰 즐거움”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레녹스가 저서에서 셰익스피어를 “천재가 아니라 결점이 있는 저자로 취급”하자 문단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심지어 자신과 친분이 있던 새뮤얼 존슨이 ‘여자 돈키호테’의 일부를 썼다는 오해까지 뒤집어 써야 했다.
해나 모어(1745∼1833), 샬럿 스미스(1749∼1806), 엘리자베스 인치볼드(1753~1821), 헤스터 린치 스레일 피오치(1741∼1821), 마리아 에지워스(1768∼1849) 등 다른 여성 소설가들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이들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주요 비평가들에 의해 직조된 장막 아래 가려져 있던 찬란한 여성 소설가들을 마주하게 된다. 저자가 이들의 책을 고이 수집한 채 “작가들의 문학 유산에 바치는 찬사이자, 그들에 대한 대중의 재평가를 촉구하는 주장”이라고 한 이유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552쪽,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