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결국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어떤 입장에서 볼지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 “백설공주가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과 이를 해명한 대통령실의 태도를 두고 “말이 헛나왔다고 사과하면 될 터인데 해명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진 교수는 “환단고기가 졸지에 역사학의 ‘문헌’이 되어버렸다”면서 “‘환빠(환단고기 추종자)’는 25년 전 철지난 유행인데 갑자기 왜 다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진 교수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치가 아리아 인종 기원을 찾으려 고고학자들을 보냈고, 일제가 임나일본부를 찾으려 남의 나라 무덤을 파헤쳤지만 결국 아무 증거도 찾지 못했다. 이 모두가 과학이 신화의 신하가 될 때 발생하는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진 교수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선 사회적 퇴행의 징후로 해석했다. 그는 “이것이 그저 대통령 개인의 단순한 실수나 교양의 결핍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인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뮈토스)에서 이성적 설명(로고스)으로 이행해 왔지만, 최근 다시 로고스에서 뮈토스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 사례로 김어준 씨의 ‘개표 조작 음모론’을 들었다. 그는 “이 새로운 이야기는 문자 문화 이후에 등장했기에 자신을 과학으로 포장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김어준이라는 이야기꾼의 허구(구라)를 한국이나 미국의 대학 교수들이 전문 용어를 동원해 ‘K값’ 등 과학적 이론으로 둔갑시켰다”며 “김어준이 세계를 열면 학자들이 들어와 이론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전반의 지적 수준에 대한 비판도 덧붙였다. 진 교수는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멘탈리티 역시 과학이나 이성을 이야기에 종속시키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했다.
앞선 14일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지난 12일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과정에서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의 관련 발언은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전하며 “국가의 역사관을 수립해야 하는 책임 있는 사람들은 그 역할을 다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의 질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이 대통령은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과정에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 교육과 관련해, 무슨 ‘환빠 논쟁’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환빠 논쟁은 주류 역사학계에서 위서로 규정하는 역사서인 환단고기의 내용을 신봉하며, 한국 고대사를 근거 없이 과도하게 확장 해석하는 집단과 기존 역사학계 간의 대립을 의미한다.
박 이사장이 모른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를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느냐”며 “고대 역사 부분에 대한 연구를 놓고 지금 다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에 박 이사장은 “소위 재야사학자들보다 전문 연구자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기에 저희는 그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 대통령의 후속 질문에 “역사는 사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문헌 사료를 저희는 중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결국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어떤 입장에서 볼지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고민거리”라고 말하며 이날 대화는 마무리됐다.
이후 야권을 중심으로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환단고기를 관점의 차이라고 하는 건 백설공주가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환단고기는 역사학계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누군가 조작한 위서라고 결론 난 지 오래”라며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이 역사 업무를 담당하는 동북아역사재단에 ‘환단고기 논쟁은 관점 차이일 뿐이니 대응하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임정환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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