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미국 정부 부채가 37조 달러를 돌파했다. 8개월 만에 1조 달러 증가했다. 이자로만 1조 달러 넘게 나가게 생겼다. 미 무역적자도 9184억 달러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갈팡질팡하는 듯 보이지만 경제정책 목표는 딱 두 가지다. 재정과 무역, 이른바 쌍둥이 적자 줄이기다. 관세전쟁은 무역적자를 줄이고 관세 수입으로 재정적자를 벌충하려는 포석이다. 트럼프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해고를 위협하며 빅컷(기준금리 대폭 인하)을 요구하는 것이나, 극단적 비둘기파인 케빈 해싯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차기 연준 의장으로 미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른바‘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을 위한 사전 작업이다.
원래 빚은 갚기 전에 안 없어진다. 하지만 부채 위기를 피하는 두 가지 꼼수가 있다. 하나는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금융 억압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융에 개입해 부채 부담을 몰래 줄이는 것이다. 대표적 수법이 물가상승률보다 국채 수익률 곡선을 낮게 통제하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낮추고 통화량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면 화폐의 실질 가치가 떨어지고 결국, 정부 부채 부담이 줄어드는 원리다. 대표적 사례가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이 펼쳤던 금융 억압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선진국들의 나랏빚이 너무 많아졌다. 이대로 가면 미·일·영·프 등은 정부가 파산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세금을 올리면 표를 잃고 정부 지출을 줄이면 경기 침체를 부른다. 금융 억압은 이런 위험을 피하려는 꼼수다. 돈의 가치를 하락시켜 결국 부채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기준금리를 내리고, 물가를 끌어올려 빚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 돼 버렸다.
문제는 더 이상 시장이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4.19%로 고공행진 중이다. 투자자들이 꼼수를 알아채고 국채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다. 돈은 실물로 몰려가고 있다. 금값은 온스당 다시 4337달러로 치솟았고 4.3달러까지 내려갔던 구리 선물가격도 5.35달러로 폭등했다. 금융 억압으로 나랏빚을 녹이려다가 정부 신뢰부터 녹아내릴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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