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나오지도 않은 정부의 대규모 주택공급대책을 놓고 시장엔 불신이 가득하다. 당장 살 집이 필요한데 정부의 시선은 7∼10년 후 공급에 머물러서다.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 10%에도 못 미친다. ‘공급가뭄’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내년 집값이 우상향한다고 봤다. 전월세 폭등도 예측됐다. 수급의 함수가 가격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로 수요를 억눌러도 공급이 없다면 값은 치솟는다. 실행력도 없다. 9·7 공급대책에 포함된 유휴부지 개발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역세권에 25∼30평 임대주택을 지으라고 지시했지만, 재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시장을 설득하기엔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 과연 정부에 공급 의지가 있는 걸까.
공급 기조는 부동산을 대하는 진보 정권의 철학과 무관치 않다. 얼마 전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보고서 한 권이 재조명됐다. 지난 2023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낸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인데, 당시 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이 추천사를 썼다. 골자는 ‘부동산은 공공 자산’이다. 새삼 주목받은 것은 정부가 세 차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보고서 제언과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전세 축소를 통한 월세 전환 촉진, 공공주도 개발, 부동산 감독기구 신설 등 보고서에서 다뤄진 내용은 이미 현실화했다. 사실상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답안지’란 얘기까지 나왔다. 실현되지 않은 주요 정책은 토지공개념과 보유세 강화 등이다.
토지공개념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다시 불러냈다. 그는 지난달 말 전당대회에서 “토지공개념은 ‘부동산 공화국’ ‘강남 불패 신화’를 해체하기 위한 근본적 처방”이라고 주장했다. 토지공개념은 국가가 토지 사용을 통제하는 정책이다. 헌법에 선언적 의미로 규정된 한국에선 공공택지, 공공임대주택, 그린벨트 등으로 유지되고 있다. 조 대표는 위헌 판결을 받은 토지초과이득세 등 ‘토지공개념 3법’ 재추진도 시사했다. 비판은 빗발쳤다. 토지공개념이 시장경제 자율성을 훼손할 정도로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당사자 적격’ 논란도 들끓었다. 조 대표는 강남 ‘아크로 리츠카운티’로 재건축되는 ‘방배삼익아파트’를 보유한 자산가다. 온라인에선 “자본주의 혜택을 모조리 누리면서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아크로 리츠카운티를 포기하고 임대주택에 입주하면 진정성을 인정하겠다” 등 성토글이 쏟아졌다.
증세 방향성은 보고서에 명확하게 나와 있다.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서는 보유세 강화가 즉효’란 문장을 통해서다. 10·15 부동산 대책에선 세제 합리화 용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시장은 이를 보유세를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보유세를 높이면 세입자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내 집 마련 시기도 늦춰진다. 보고서 논거를 제공한 김수현 세종대 교수 저서에 나온 힌트는 이렇다. ‘집을 가진 사람은 보수적, 없는 사람은 진보적 투표 성향을 보인다.’ 재집권을 노린다면 서민이 집 사는 걸 어렵게 만들기 위해 규제를 가할 수밖에 없다. 재건축·재개발 등 신규 공급에 인색하고 경제 논리에는 역행하는 정책이 이해되는 대목이다.